2017년 가을 112호 - 궁리소 차담회, 시설 잡감 / 박정수

by 노들 posted May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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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소 차담회, 시설 잡감


  박정수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노들’에 온 지 1년 반이 넘어 간다. 작년에는 『비마이너』 객원기자로 생활했고, 올해는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궁리소 핑계대고 『비마이너』 기사 작성은 거의 못하고 있다. 미안해 죽겠지만, 유능한 신입 기자가 들어와 한 시름 놨다. 염치없이 『비마이너』에 붙어 있는 이유는 편집회의나 텔레그램 그룹방에서 얻는 현장 소식과 활동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은 멈춰 있는 내 안의 글쓰기 기계가 다시 움직일 때 『비마이너』와 활발히 접속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올해 3월에 출범한 장애학 연구기관으로, 유리건물 4층 비상계단 옆방에 있다. ‘궁리소’란 이름에 담긴 깊은 뜻은 홈페이지(http://goongree.net/) ‘소개글’에 나와 있다. 주된 활동은 장애학에 관한 세미나와 강좌, 토론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솔직히, 여기서도 제 역할 못하고 있다. 10여년의 연구소(수유너머) 활동을 끝내고 ‘노들’에 왔는데, 또 연구소 활동을 하려니 의욕이 불타지 않는 걸까? 아니면 장애학이 아직 내 것 같지 않아서일까? 강좌도 열고, 새로운 활동도 창안하고, 글도 많이 쓰면 좋을 텐데, 슬럼프인지 굼뜨게 지낸다.

 

김정하 활동가와 차담회 장면

 


지금은 펼칠 때가 아니라 새로 배워야 할 때라고 자위해 본다. 노들장애학궁리소는 분명 새로운 인문학을 개척하기 더없이 좋은 기관이다. 장애학을 공부할수록 전에 공부한 철학과 인문학의 개념들이 시험대에 올려진 것 같은 긴장을 느낀다. 장애학은 단지 인문학의 소수 분과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경계를 다르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블루오션이다. 또한 한국 장애인 운동의 중심지인 ‘노들’이야말로 장애학하기 딱 좋은 곳이다. 야학, 자립생활센터, 활동보조교육장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과 소통할 수 있고, 전장연과의 연대를 통해 장애인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이론의 시험대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입지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프로그램이 ‘궁리소 차담회(茶談會)’다. 한 달에 한 번 장애인 운동, 소수자 운동 활동가를 초대하여 현장의 목소리와 문제의식을 듣고 담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다들 너무바빠 지금까지 겨우 세 번밖에 못했지만, 수험생 ‘인강’ 듣듯, 족집게 ‘과외’ 듣듯 농축된 배움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특히,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의 김정하 활동가와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 운동에 대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푸른숲, 2010)로 유명한 김원영 변호사(前 국가인권위 장애차별 조사관)와 정신병원에 대해 담화를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국가인권위 연구사업 차 세 차례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조사에 참여했는데, 그때 든 상념과 의문을 차담회에서 풀 수 있었다. 2010년에도 미신고 시설 실태조사에 참여한 적 있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7년 전의 기억 속에서 장애인 시설은 감금, 폭력, 노역, 비위생, 비리, 횡령, 시설 폐쇄, 전원조치에 맞서 “애들 엄마”라고 자칭하는 원장의 악다구니가 전개되는 드라마틱한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에 본 시설은 완전 평온해 보였다. 대체로 우리 집보다 깨끗했고, 폭력이나 감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아무런 드라마도 없다는 점이, 어떤 사건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그 완전한 무위의 평온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정신요양원이었다. 끊어졌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면담자와의 소통의 끈을 붙들고 씨름을 하다 문득 중앙 거실로 오후 햇빛이 쏟아지는 걸 보았다. 그 햇빛을 등지고 수십 명의 생활인들이 초점 없는 눈빛으로 팔을 흐느적거리며 맴도는 게 보였다. 좀비 같았다. 그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다른 두 곳의 중중장애인 시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좀 더 규모가 작고, 좀 더 쾌적하고, 좀 더 잘 관리될 뿐, 인간적 삶이 아니라 사육되는 삶이라는 점은 같았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싸고, 멍하니 허공과 TV를 응시하다 또 자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생활지도사의 감시 속에 시설 밖 사람들과는 물론이고 거주인들간에도 우정이든 갈등이든 아무런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관리 편의를 위한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 오랜 시설생활 자체에 중독되어 무위의 평온과 무의미한 안전을 강요받고 있었다.


첫 번째 시설조사 후 총평 시간에 나는 “좀비 같았다”는 끔찍한 단어로 내 느낌을 전했다. 그러자 정신장애인 인권에 조회가 깊은 대학교수라는 분이 “다른 정신병원에 비하면 살 만한 곳이던데요”라며 다른 느낌을 전했다. 이 감각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 교수는 건물 바깥에서 면담을 진행했다는데, 공간적 차이에서 생긴 감각의 차이일까? 아니면 다른 시설과 이 시설을 비교하는 감각과, 시설의 삶과 나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감각의 차이인가? 혹시 그 교수는 그 차이를 전문가의 ‘익숙함’과 초보자의 ‘순진함’에서 비롯된 걸로 이해하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탈시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의 ‘익숙한’ 감각과 그건 얼마나 다른 걸까?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어지러운 물음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김정하 활동가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했다. 형제복지원부터 장항수심원, 양지마을 등 탈시설 운동의 대표 사례를 훑다가, 그는 성람재단 싸움의 실패와 석암재단 재단 싸움의 성취를 비교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설조사 때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성람재단을 설립한 전 이사장의 동상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동상 앞에 선 탈시설 활동가의 분노와 회한, 시설 안과 밖 사이 벽보다 높은 감각의 차이에서 오는 막막함이 전해졌다.


두 번째 시설조사 때는 발달장애인 부모와의 감각 차이를 느꼈다. 부모회에서 출자하여 만든 그 시설은 발달장애 부모의 욕구가 정확히 반영된 곳이었다. 식단도 좋고, 위생적인 환경에, 7명 내외의 유닛 단위로 생활지도사와 CCTV의 빈틈없는 보호 속에 외출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위치였다. 그 안락한 시설은 산 속 깊이 유폐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지역사회와의 일상적인 교류가 불가능했다. 지역사회의 인적 자원과 서비스 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거의 없었다. 부모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러 노트북을 가진 생활인은 있어도, 핸드폰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부모는 발달장애 자녀가 지역사회를 활보하며 손가락질 당하는 것도 싫고, 혹시 모를 사건 사고도 겁나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와 나머지 가족들의 평화를 깨는 것도 원치 않았다.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면회 가고 외출하는 건 좋지만, 발달장애 자녀 쪽에서 연락해 오는 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곳은 안락한 병영 같았다.


그 정도의 자원과 부모의 욕구가 충족된 시설라면 산 속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날마다 동네 산책도 가고, 시장도 가고, 극장도 가고, 취미 생활도 하고, 야학도 가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도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김정하 활동가는 그럴 수 있고, 그런 시설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통합교육의 경험이 있는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의 감각과 용기, 상상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장애인 그룹홈을 견학 했던 얘기를 했다. 3명이 함께 사는데, 한 사람 방문이 잘 안 열려 밀었더니, 방 안에 도색 잡지를 비롯한 온갖 잡지들이 어질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별로 독립된 주거가 좋지만, 이 정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면 충분한 지원 하의 그룹홈도 탈시설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대로 지역사회의 영구임대주택으로 탈시설을 해도, 강서구의 영구임대아파트처럼 장애인과 빈민이 단지별로(4, 5단지) 게토화 되면, 차별과 혐오의 시선 속에서 그곳은 담장 없는 시설과 다를 바 없다. 시설은 보이는 건물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회적 배제의 장치이며, 탈시설은 지역사회로 거주지를 옮기는 물리적 통합을 넘어 장애인의 일상이 문화적으로 통합된 사회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김원영 변호사와 차담회하는 장면


김원영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대다수 1차 병원급 정신병원은 분식집이나 과일가게와 나란히 도심의 한복판에, 치과나 정형외과처럼 아무렇지 않게 위치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근처 주민들도 알지 못하며,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그 건물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이들은 분식집이나 나무는커녕 햇빛을 볼 기회도 거의 없으며 기껏해야 옥상 공간을 ‘산책 시간’에 밟으며 하늘의 모양을 확인한다. 첫 번째 정신요양원 실태조사 총평 때 대학교수가 “다른 정신병원에 비하면 이곳은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화장실 냄새가 진동하지도 않았고, 건물 내 행동반경도 넓었으며, 무엇보다 낯 시간에는 건물을 나와 땅을 밟으며 산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녁 식사 후에는 현관 출입문을 잠근다는 점, 4층 건물에 300명 가까이 수용되어 있다는 점, 한 방에 7명이 밀집 생활을 하며, 몇 명 되지 않는 생활지도사의 규율에 의해 완벽히 통제된 생활을 한다는 점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하루도 견딜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대다수 중증장애인 시설과 비교해도 너무 열악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두 곳의 중증장애인 시설조사에서 눈으로 확인한 것처럼, 요즘 대다수 장애인 시설은 수용 인원이 정신요양원처럼 그렇게 많지 않고, 생활지도사가 그렇게 적지 않고, 감금과 통행금지 같은 규율도 없다. 「장애인복지법」의 규정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정신요양원은 왜 중증장애인 시설보다 훨씬 열악한 생활환경을 유지하는 걸까? 그건 정신요양원에 수용된 사람들이 「장애인복지법」의 예외 대상인 정신질환자로,「정신보건법」(現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해 감금과 결박도 가능한 치료 대상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요양원의 거주인과 중중장애인 시설의 거주인 사이에 어떤 유의미한 차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정신요양원 거주인 중 버젓이 지적장애인으로 등록된 이도 꽤 있었고, 조현병 환자로 분류된 이들이 지적장애와 구별된 정신병적 증상에 시달린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그들이 복용하는 약과 중증장애인 시설의 지적장애인들이 복용하는 신경안정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들의 텅 빈 눈빛과 인격, 지리멸렬한 사고와 언어가 정신질환에 의한 증상인지 중증장애인 시설의 지적장애인들과 다름없이 오랜 약물 중독과 시설병에서 비롯된 것인지, 도무지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김원영 변호사는 충격적인 말로 나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 두 집단 간에 의학적 차이는 없으며, 정신의학과 정신병원은 그 차이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수용된 수많은 사람들과 중증장애인 거주인들 간에도 의학적 차이가 없다. 즉, 수많은 발달장애인이 정신병원, 특히 1차 병원급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적 증상이 전혀 없거나, 조금 있어도 입원할 정도는 아닌 경우에도 부모에 의해 강제로, 혹은 자의로 정신병원을 장애인 거주시설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신병원 운영자가 그들을 수급자로 만들어 국가로부터 입원료를 받으면서 “그들은 나가면 갈 데 없다”고 할 때, 그들과 중증장애인 시설 운영자의 차이,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의 경계는 지워지고 없다. 없어도 되는 걸까? 없다면 차라리 「장애인복지법」을 기준으로 생활 여건이나 개선하지, 정신건강복지법의 강제 규정으로 감옥 같은 환경에 방치할 건 뭔가?

 

김원영 변호사에 의하면, 알코올중독이나 인격장애를 가진 입원자들에게 정신병원은 감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가족과 이웃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보호자나 경찰에 의한 강제입원의 단골 대상이다. 게다가 정신병원은 재판 절차나 형량 같은 번거로운(?) 사법적 규정조차 면제된 채 손쉽게 무제한적 감금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나가면 갈 데 없다”가 정신병원을 거주시설로 만든다면, “나가면 위험하다”는 이유가 정신병원을 감옥으로 만든다. 내가 기대했던 정신병원 고유의 기능, 즉 정신질환 양성 증상 치료를 위한 단기 입원 비중은 40%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가난한 발달장애인들의 거주시설이나 위험한 비행자들의 감금시설로 기능한다. 게다가 그 강제 수용시설은 복지 규정이나 사법 규정의 예외공간으로서 인간적 삶의 제 형식들이 박탈된 채 자의적 폭력 앞의 벌거벗은 생명만 연명케 한다.


노들야학 학생들 중 상당수가 오랫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이번에 만난 정신요양원의 사람들처럼 텅 빈 눈과 공허한 인격, 지리멸렬한 언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보였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탈시설 장애인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이 “나가면 갈 곳 없다”, “나가면 위험하다”며 시설을 존속시키는 감각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공통 감각을 생성할 것이다.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당사자들의 투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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