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112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나의 잣대와 기준은 뭐였을까

by 노들 posted May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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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나의 잣대와 기준은 뭐였을까
활동보조 하면서 느낀 글
 

 

  이용자 김장기
  활동보조인 이상석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


처음 장기 씨와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장기 씨는 원래 사려고 했던 것 말고 다른 이것저것 필요 이상의 물건들을 사려고 했다. 그런 장기 씨를 설득하면서 제지를 하자 얼른 수긍하고 과소비와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것 때문에 장기 씨 마음에 조금씩 불만과 화가 쌓여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르지만) 활보를 한 지 3주째 정도 되었을까? 센터로 가던 도중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에 들러서 소형라디오를 사겠다는 장기 씨(이미 집에 같은 걸로 3개가 있었다. 새 거로)를 못 사게 말리고 달래고 있었다. 그랬더니 장기 씨가 짜증이 났는지 그 자리에서 막 화를 내면서 “내가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게 혀”하면서 허공에 대고 막 욕까지 해댔다. 그때는 정말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그 이후에도 길을 가다가 사고 싶거나 호기심이 생긴 것을 보면 들어가서 꼭 사고 만다. 내가 못 사게 하거나 그냥 가버리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무조건 “아니 이거” 또 “아니 이거”하면서 고집을 부린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 날 도 장기 씨와 물건을 못 사게 하는 신경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나도 참다 참다 못해 화가 나서 장기 씨에게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공중에 육두문자를 날려버렸다. (사실 때리고 싶은 마음까지... ^^;;) 센터에서 일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에서 장기 씨에게 교통카드를 꺼내 달라 했을 때 카드가 없어졌다고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기에 “그럼 같이 찾아봐요” 했다. 그랬더니 없다고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지갑과 가방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만 보여줘 봐요. 잘 찾아보게”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마침 같은 주택에 사는 인성 씨가 지하철을 타러 오셔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주택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고 찜찜한 마음과 진짜 잊어버렸거나 누군가가 훔쳐갔다면, 코디님에게 말씀드려야 하니 장기 씨가 화장실에 갔을 때 혹시나 하면서 지갑을 뒤져 보았다. 역시나 지갑 속에 교통카드가 있었다. 나는 그게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장기 씨가 오자마자 따져 물었더니 “물건도 못 사는 그게 무슨 카드야! 에이씨” 하면서 성질을 내면서 짜증을 냈다. 화가 난 나는 그 길로 코디님께 전화해서 “더 이상 장기 씨 못하겠어요. 그만 둘 거니깐 다른 사람 알아봐주세요.” 라고 했던 게 벌써 지금까지 와버렸다. 

 

이용자 장기 님
 
활동보조를 하면서 생각하거나 느낀 것


활보를 하기 전엔 신기할 만큼 장애인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강남이나 평창동같이 부자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고, 서민 중에 서민인 내가 사는 동네라면 주변에 많이 있을 법한데 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이 일을 하다 보니 조금은 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심을 가지니깐 동네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또 신기했던 건 생각보다 장애인 숫자가 많은데 왜 이렇게 조금밖에 안 보일까? 그것 또한 관심을 가지고 보니 보였던 것인데, 많이 개선 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전동휠체어가 갈 수 없는 건물이나 시설들이 많았고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보면 피하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위축되고 주눅 들어서 더 밖으로 안 나오고 안에만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 일을 하기 전까진 사실 그랬던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릴 때마다 싫었다. 물론 복지예산이 전부 장애인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까지 내가 해왔던 생각은, 일도 안하고 세금도 안내는 장애인들은 가만히 놀고먹으면서 돈까지 받고 나는 헬조선에서 죽어라 일해서 세금 내고 혜택도 내는 것만큼 못 받으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에 미래와 노후를 걱정하고 있는 게 너무 얄밉고 싫었다. 하지만 그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밖에서만 봤을 때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비장애인들처럼 여러 가지 욕구와 욕망이 있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비장애인들은 마음껏 누릴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는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정말 최소한의 것만 그것도 제한적으로 누린다. 사람은 하나를 가지면 거기서 만족하기보단 하나를 더 가져 두 개를 가지고 싶어 하고 또 세 개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게 사람일진대 장애인들이라고 다를까? 병이나 사고로 후천적이 되었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이 되었든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내가 더 이해해야지 하면서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가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내 속에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동정심이 더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이 세상을 즐기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해왔던 잣대와 기준들은 뭐지? 그건 정말 객관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을 요즘 조금씩 해본다.


사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이 일을 더 할지 모른다. 확실한 건 아직은 젊기에 다른 일에 곧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며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준비가 되면 떠날 거다. 하지만 떠나서도 그 전과 같이 아예 관심 없이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게 돕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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