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야학]중증장애인들에 '시설밖의 삶' 가르치는 노들야학

by (사)노들 posted Sep 25,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일반
중증 장애인들에 ‘시설 밖의 삶’ 가르치는 노들야학 “비장애인과 어울려 사는 방법 알려주죠”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ㆍ성인 특수학교는 2곳뿐… 학생 60명에 실전 교육
ㆍ“시설 생활 14년, 23번 외출… 숫자 셀 만큼 행복한 기억”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 배승천 상근교사(33)가 맥주캔을 들어올리며 “우리가 이 영어를 읽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교실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동의자에 앉은 뇌병변장애 1급 김호식씨(41)가 입을 뗐다. 가누지 못하는 몸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려 맥주캔을 바라보고는 10여초에 걸쳐 힘겹게 ‘카~아스’라고 답했다. 배씨와 다른 장애 학생 5명이 박수를 쳤다. ‘C’로 시작하는 영어단어를 배우는 날이다. 배 교사가 노란 컵을 잡았다. 지적장애 3급 박주원씨(47)가 다른 학생들에게 지기 싫다는 듯 재빨리 ‘컵’이라고 답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승동 노들야학의 한 교실에서 진행된 ‘실전 영어수업’ 시간 풍경이다. 노들야학은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귀화어·외래어 수업을 준비했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지난 16일 장애인들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93년 설립된 노들야학은 성인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다. 서울에 있는 장애인 성인을 위한 특수학교 2곳 중 1곳이 노들야학이다. 여러 지식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시설 생활에서 벗어난 장애인들에게 사회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시내버스·지하철을 타는 방법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식부터 철학, 장애학, 인권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 60여명과 비상근교사를 포함한 30여명의 교사가 어울리는 공동체다. 

노들야학은 ‘탈시설’을 추구한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허신횡 노들야학 상근교사는 “시설에 장애인을 가둬두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들에게 수용소에서 30년 살라’고 하면 말이 안되는 것과 같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단체생활을 하며 이성을 만나지도 못하고 식사도 같은 시간에 하며 규율을 따라 평생을 사는 건 분명 잘못된 겁니다.” 

실전 영어 수업도 이런 뜻에서 마련했다. 허 교사는 “수십년간 시설에서 살던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면 비장애인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이민간 것과 같다”며 “번호키로 집 문을 여는 것부터 사람 만나는 것까지 여러 부분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들야학은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장애인을 억압하는 수용시설을 교황이 방문하면 안된다”며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꽃동네에서 지난해 4월 나와 자립생활을 하며 노들야학을 다니는 뇌병변장애 1급 이병기씨(45)는 ‘시설 생활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씨는 “시설에 있는 14년 동안 23번 외출했다. 동생 가족과 외식하러 나갈 때면 매우 행복했다. 그래서 숫자를 세며 기억한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말을 잘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답답한지 아느냐’ ‘당신이 가서 한 번 시설에서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TAG •

Articles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