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교사의 길
김헌용 | 구룡중학교 영어교사, 한국시각장애교사회 회장
들어가며
2010년 3월, 교단에 처음 섰습니다. 서울시에서 1급 시각장애인이 일반학교 교사가 된 것은 최초라고 했습니다.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최초라는 말을 붙이기 위해서 참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군!’
그랬습니다. 서울시에는 이미 많은 장애교사가 일하고 있었고 저는 시각장애 1급으로서 최초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만큼 ‘최초’라는 말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 교사가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뭇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7학년도부터 장애교사가 별도의 구분모집을 통해 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구분모집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2017년 현재 전국의 장애교사는 약 3,500명에 이릅니다. 그중 약 500여 명이 중증장애인이고, 그중 90여 명이 저희 한국시각장애교사회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수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시각장애교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전맹 교사의 경우 보통 보조원과 함께 수업에 들어갑니다. 보조원은 학생들에게 수업자료를 나눠주고, 컴퓨터를 조작해주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자리를 옮기거나 장난을 칠 때 지도하는 일을 합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도 시각자료를 찾거나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저시력 교사의 경우에도 학교 차원에서 보조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교육청에 요구해서 보조원을 배치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조원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행정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용 전자시스템의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필요한 보조기기가 지원되어야 하며, 각종 온·오프라인 연수가 장애인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부분의 시·도에서는 보조원 외에 나머지 지원을 교육청이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은 보조원만 하더라도 경기도교육청 같은 곳에서는 지원하지 않으며 다른 많은 시도도 보조원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낮아 대부분의 시각장애교사들이 매년 새로운 보조원을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까지 장애교원에 대한 지원을 오로지 민원에 의해 그때그때 처리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증 장애교사는 물론 상당수의 중증 장애교사들도 필요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히 보조원 지원을 넘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종합적인 장애교원 지원 대책을 마련할 때입니다.
경력이 쌓여도 담임이나 주요 업무를 맡을 수 없다
결국 핵심적인 문제는 장애교사가 교사로서 성장할 기회가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2016년 7월에 교사회 내에서 작은 설문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조사에 참여한 38명 중 담임 경험이 없는 사람이 73.7%, 부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97.4%였습니다. 교육 경력이 쌓여도 교육 경험은 쌓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휴직 2년을 제외하고 6년째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담임을 맡은 적이 없고 2년은 아예 아무런 업무도 배정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교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수업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대인관계와 사건들은 담임 및 행정업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담임을 맡는 것은 학생과의 직접적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고 다른 교사와의 깊은 유대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담임과 비담임은 학교 내에서 물리적으로도 분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많은 서울의 중학교들은 교무실 자리 배치를 업무가 아닌 학년을 기준으로 합니다. 교무실이 교무기획부, 교육연구부, 자연과학부 등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1학년부, 2학년부, 3학년부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서에는 그 학년의 담임교사가 먼저 배치되고 자리가 부족하면 비담임교사는 교무기획부, 교육연구부, 자연과학부 등에 배치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저는 모든 수업이 1학년 수업임에도 1학년부실이 아닌 부장님들이 모여 계신 중앙 교무실에 자리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행정업무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어서 부장님들로부터 업무를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 귀동냥할 기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학년별·반별로 시행되는 행사에 대해서도 먼저 물어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시각장애로 인해 교실이나 학교 게시판에 붙은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들을 기회마저 없으니 이중 장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교직 생활을 하면서 뿌듯한 순간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지난 5월의 어느 월요일이었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있는 구룡역 1번 출구를 나섰습니다. 발을 인도에 내딛는 순간 전에는 없던 것이 발바닥에 느껴졌습니다. 그 전 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없던 것이었습니다. 몇 걸음 걷는데 얼굴에 절로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란 점자유도블록이었습니다. 좁다란 길을 점자블록을 밟으며 걸어가는데 어찌나 편하던지요. 흰지팡이를 짚지 않아도 방향을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이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출퇴근길에 불안감을 훨씬 덜 느낄 것이었습니다.
누가 점자블록을 깔아달라고 민원을 넣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점자블록이 생기는 일은 누군가의 민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 같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민원을 넣으셨을까? 대체 누가 이런 일을 했을지 계속 궁리하면서 교문을 들어섰습니다. 바로 그때 머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약 3주 전에 중1 아이들이 제게 와서 인터뷰해 간 기억이 난 것입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어른들이 물어보는 질문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학교생활을 하시며 불편한 것은 없으신가요?”
저는 딱히 없다고 답했습니다. 어차피 학생들에게 시나 국가 차원의 정책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터였습니다. 다만 학교는 괜찮은데 출퇴근길에 점자블록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얘기는 지나가듯 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깊게 물어보지 않고 곧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너무나도 짧은 인터뷰였기에 저는 곧 그 인터뷰를 한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교무실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인터뷰하러 왔던 학생 중 한 명의 반으로 찾아갔습니다.
“얘야, 저번에 선생님 인터뷰해 간 건 잘 진행이 됐니?”
“네. 지난주에 보고서 잘 냈어요.”
“그런데 그 인터뷰가 뭐에 대한 거라고 했었지?”
“사회참여토론이란 건데요, 보고서 결과가 잘 나오면 학교 대표로 나가서 토론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구청장에게 바란다’라는 앱에 글 올려서 지금 점자블록이 깔렸어요.”
고마웠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한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슴이 가장 벅차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자가 저를 인터뷰해 갔습니다. 힘 있고 높은 분에게 장애 교사들의 고충에 대해서 건의한 것도 수차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게 해준 것은 그들이 보인 관심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공문 한 장, 기사 한 페이지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직접 행동을 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1 아이들은 제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구청에 올린 글은 하루아침에 제 삶을 바꾸고 구룡역 근처의 풍경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가르침을 줘야 할까요.
‘구청장에게 바란다’ 학생이 올린 게시글에 도로관리과의 답변
나오며
학교에서 감동을 받은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나날은 힘겨운 씨름의 연속이지만 결국은 교사로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이제는 시각장애교사가 교실을 넘어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다른 장애인과 넓게는 우리 사회에 우리가 받은 것을 공유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료 시각장애교사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우선은 같은 장애교사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교육 역량을 높여가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합니다. 교육청과 연수원, 장애인고용공단과 복지관 등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장애교사의 집단 역량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실질적으로 학교생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장애학생이 통합교육을 하듯 장애교사는 비장애인이 다수를 이루는 학교에 기능적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담임과 주요 업무를 맡는 장애교사가 더욱 늘어나야 합니다.
셋째는 더 많은 사회참여가 필요합니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은 빈곤선에 놓여 있고 장애인의 사회 진출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직업적 안정을 누리는 극소수의 직업군으로서 시각장애교사가 사회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면 할수록 다른 장애인에게는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고 사회는 더욱 포용적인 곳으로 바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우리 사회에 몇 없는 자아실현이 가능한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지위와 수입 덕분에 장기적 관점에서 인생을 설계할 수 있고 교육의 특성상 끝없는 연구와 자기 계발이 요청됩니다. 그러한 직업적 특성을 잘 활용하면 높은 삶의 질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시각장애교사들이 스스로에,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시각장애교사가 아닌 분들도 이러한 시각장애교사의 노력에 지지와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교사들의 앞선 도전과 열정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에게 있어 교사는 아직 블루오션과 같은 직업입니다. 저와 시각장애교사들이 더 많은 장애인이 교직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 잘 닦아놓겠습니다.
점자블록이 깔린 구룡역 앞 길, 점자블록을 따라 김헌용 교사가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