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핫이슈]
문재인정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천명’하라!
조현수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달리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글쓰기도 더 많이 익숙해지고 잘 하고 싶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되고 어려워한다. 눕자마자 잠드는 사람이 제일 부럽고, 푹 자는 게 인생 최대 숙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가히 위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또 체감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OECD국가 통계 중 안 좋은 것으로 많은 영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한국 사회입니다.
출산율은 제일 낮고(한국 1.23명 / OECD 평균 1.74명),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도 제일 낮으며(한국 72.54점 / 스페인(1위) 117.23점), 반대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고등교육 이수율은 제일 높습니다(한국 98% / OECD 평균 82%).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노동하기에 산재 사망률은 제일 높고(인구 10만명 당 한국 20.99명 / 영국 0.7명), 연간 노동시간은 최고 수준(한국 2,090시간 / OECD 평균 1,776시간)입니다. 사회복지는 최하 수준(GDP대비 사회복지 지출 한국 9.6%/ OECD 평균 22.1%)이고, 자살률은 1위(인구 10만 명당 한국 33.3명 / OECD 평균 12.6명)이며, 노인 빈곤율 1위(한국 49.3% / OECD 평균 13.5%), 노인 자살률도 1위(65세 이상 10만 명당 한국 80.3명 / OECD 평균 20.9명)인 것이 한국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게 실화냐?”라고 할 수 있을, 안 좋은 의미로서 한국은 천명(擅名)1)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장애’와 ‘빈곤’은 천명(賤名)1) 그 자체였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개인적 비극으로, 감내해야 할 운명으로 짊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 공과금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가 그러하였고, “내가 죽고 나면 우리 아이가 수급권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인 가족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사연은 달랐지만, 죽음으로 내몰리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같았습니다. 바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오랜 적폐. “제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제 이 씨 할머니의 말처럼, 나쁜 제도로서 천명(擅名)해온 그것이 바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입니다.
이 씨 할머니의 죽음이 있었던 바로 그해 2012년 여름, 우리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기 위해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광장 지하도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100일이 지나고 1,000일이 지났으며 그 뜨거웠던 계절을 만 5년, 햇수로는 6번째 맞이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과 함께해온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힘을 모았고 더 단단해졌으며 연대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알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잘못된 제도에 저항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천명(天命)2)은 확인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두 제도를 왜 폐지해야 하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알렸고, 13개의 영정 사진이 우리 앞에 놓이던 순간에도 우리는 저항했습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연인원 천만 명의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이 두 제도의 폐지를 약속했습니다.
한국 사회 불평등 해소와 적폐 청산을 요구했던 촛불의 힘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재인정부도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우리가 그 어두운 밤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공약한 것은 바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19대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더욱 크게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와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폐지를 천명(闡明)3)했습니다. 그 의지들이 보여준 것은 1,800일이라는 투쟁의 시간과 기록, 그리고 지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에 광화문광장으로 전국에서 모인 1천명의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이 되어가고 광화문 농성 투쟁 5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악랄하게 천명(擅名)해온 두 제도의 폐지는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빈곤문제 1호 과제로 대선 시기 복지영역의 가장 큰 화두였던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본인의 입으로 우리들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7월 중순 발표된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8년(그것도 연말부터) 주거급여에서의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고, 2019년 의료·생계급여에서 노인과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소득 하위 70%인 가구의 경우에만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장 폐지’가 어렵다면 누가 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지 가난을 선별하는 방식의 ‘인구학적 폐지’가 아니라 ‘급여별 단계적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나중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빈곤을 대물림하는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의 해결은 ‘완전 폐지’의 선언과 함께 빠른 시일 내 이루어지는 ‘단기적’ 폐지여야만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인 ‘장애등급제’도 폐지에 대한 계획과 이후 방향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및 종합지원체계 도입 추진’이라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 때도 국정과제를 통해 ‘개인 욕구, 사회·환경적 요인을 반영한 장애판정체계로 단계적 개선’이라고 제시하였기에, 박근혜정부의 정책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박근혜정부 시절 추진되었던 ‘장애등급제 개편(안)’에 대한 3차 시범사업이 그대로 진행 중이기에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폐지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 목표와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야만 합니다.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의 장애인복지예산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목표와 함께 이후의 방향 및 구체적인 계획이 반드시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밥이 민주주의”라고 선언했던 문재인대통령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에 대해 천명(闡明)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라는 천명(天命)4)이자 촛불의 명령입니다. 광화문농성 5년,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던 마음으로 보냈던 그 5년의 결실을 맺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5주년 투쟁을 기점으로 한 2017년 하반기, 이번에는 반드시 두 제도를 완전 폐지시키겠다는 마음을 모아 다시 한 번 함께 천명(闡明)합시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각주
1) 천한 이름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이름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2) 타고난 수명
3) 의지나 각오 따위를 드러내어 밝힘
4) 하늘의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