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에서 생각해본
<연극의 3요소>
권은영 | 신재. 2015년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를 했었고 프로젝트팀 0set으로 연극/공연 작업을 하고 있음
프로젝트팀 : 0set |
지난 7월 7일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연극의 3요소>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2015년에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를 할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는 언제나 상상 이외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올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연을 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첫째 대관 가능한 극장 중 배우인 문영민(휠체어 이용자)의 시설 접근성이 보장되는 곳이 없었고, 둘째 ‘장애’를 연극의 주요한 요소이자 문제의식으로 적극적으로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한 노들장애인야학만큼 시설 접근성이 보장되면서 이 주제에 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공간은 없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우리 공연에 노들장애인야학만큼 적합한 ‘극장’은 없었다.
우리는 <연극의 3요소>를 통해서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소위 연극의 3요소로 꼽히는 극장, 배우, 관객 그 어느 영역에서도 장애인의 접근성은 주요하게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만 끊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연극 홍보 포스터와 플랜 카드가 여기 저기 달려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슨 공연을 볼까’라는 고민이 시작될 수조차 없다. 또한 장애인이 배우 또는 제작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단/공연 역시 극히 드물다. 극장은 누구에게는 열려 있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관객 또는 예술가로 셈해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연극의 주요 요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공연, 문자통역과 화면해설이 연극의 일부로 구성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취지에서 <연극의 3요소>는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 올려졌다.
비장애인 관객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도록 140cm 높이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실을 설치했고, 관객들에게 ‘극장 경험’에 관한 설문지 작성을 요청했다. 그 후 휠체어 이용 배우인 문영민과 비장애인 배우인 성수연이 서로를 캐릭터로서 이해하고 접근해가는 ‘배우’에 관한 장면이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앞서 관객들이 작성한 극장 경험과 두 배우(그리고 제작진)가 경험한 극장 입장 불가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두 배우의 극장 입장 불가 경험 내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로 제출하려고 하며, 관객들에게 공동진정인이되어달라고 제안하고 신청서를 받는 것으로 공연은 마무리 되었다.
관람한 관객들 중 70여명이 공동진정인이 되었고, 현재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내놓은 상황이다. 우리의 목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대학로 극장 시설 접근성 및 문화 개선에 관한 정책 권고를 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제대로 된 대학로 극장 시설 접근성 및 문화에 관한 조사가 전무한 상황에서 얼마나 강제력 있는 정책 권고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의 답변을 받았다. 정책 권고가 되든 되지 않든 그 상황에 맞춰서 <연극의 3요소>를 통해서 던지고 싶었던 ‘극장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극장 입장이 가능할 때 시민 입장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또 다른 공연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장애인도 동등한 인간이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아주 오래된(혹은 옳은) 것이어서인지 적어도 대놓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설 및 문화는 물론 연극, 예술,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장애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부수적으로 다뤄지거나 시혜적으로 추가된다. 마치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이미 구성된 좌석도에 장애인석을 하나 둘 추가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 우리의 연극은 이미 오래된, 하지만 언제나 새삼스러운 이 문제제기를 시설, 문화, 연극, 예술, 미학 등등에 끼워 넣는 시도이지 않을까 싶다. 노들장애인야학의 활동과 실천들과도 계속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극의 3요소>의 대사 중 일부이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인 두 배우의 극장 경험에 관한 글 중 일부를 덧붙인다.
문영민, 성수연 작
수연 6월 18일 오후 5시.
영민 우리는 서울연극센터에서 갔다. 보고 싶은 공연을 함께 골랐다.
수연 함께 고른 3편의 공연은 <양배추의 유례>, <안티고네>, <찌질의 역사>.
<양배추의 유례>는 왜 골랐었죠?
영민 제목이 재밌고, 포스터가 예뻐서요, <안티고네>는요?
수연 음.. <안티고네>라서? 그럼 <찌질의 역사>는요?
영민 우리 둘 다 원작 웹툰을 재밌게 봤기 때문이죠.
수연 우리는 함께 고른 연극을 함께 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영민 <양배추의 유례>를 공연하고 있는 선돌극장으로 출발했다. 선돌극장으로 가는 길의 보도블럭은 울퉁불퉁했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걸었다.
(수연, 영민 걸어나온다)
수연 근데 휠체어 타고 가는 거, 걷는다는 표현을 써?
영민 네. 걷는다고 말해요.
수연 우리는 함께 걸어 선돌극장에 도착했다.
영민 공연장은 지하였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공연을 볼 수 없었다.
수연 그 다다음날 나는 혼자 <양배추의 유례>를 보았다. (손톱을 뜯는다)
영민 헐.
수연 미안.. 선돌극장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혼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쓰질 않는다고, 누군가 막아놓았다고 했다. 공연은 정말 재밌었다. 영민도 좋아할 것 같은 공연이었다. 함께 보았다면 함께 할 얘기가 많았을 것이다.
(수연, 영민 한숨)
영민 우리는 조금 더 걸어 <안티고네>를 공연하고 있는 나온씨어터로 향했다. 나온씨어터는 건물의 입구부터 높은 턱이 있었다. 공연장은 지하였다. 티켓부스도 지하였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사실상 대학로 대부분의 소극장 시설의 현실이 이렇다.
수연 그런 극장들에선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이 공연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좋은 작품들이다. 그 고민을 함께 나누러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영민 마지막으로 <찌질의 역사>를 공연하고 있는 수현재씨어터로 갔다. 가는 도중, 어떤 길에는 나무데크가 깔려 있었는데, 흔들려서 엉덩이가 아팠다. 왜 그런 걸 깔아놓은 거지? 그런 걸 걷는 기분은 좋아요?
수연 딱히.. 사실 있는지도 몰랐어요.
영민 수현재시어터 입구 앞에 있는 보도블록은 너무 높아서 휠체어로 올라갈 수 없었다. 빙 돌아보니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단차가 낮은 보도블록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앞에 큰 돌과 배너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다시 돌았다. 단차가 낮은 곳을 찾았다. 그렇게 빙 돌아서 입구로 들어갔다. 헉헉. 매표소는 3층이었다. 건물 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수연/영민 있었다. 오~~
영민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표소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매표소 앞에 있는 좌석배치도를 확인했다. 휠체어석은 없었다. 직원에게 휠체어를 타고 객석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직원의 도움으로 좌석에 옮겨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연 도움? 도움이 무엇인가. ‘돕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
수연/영민 돕다. 돕:따.
영민 (힘주어 또박또박) 동사.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
수연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 누군가에겐 애초에 잘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곳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편하게 만들어진 곳에서, 들어가는 게 불편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들어가게 하는 게 왜 돕는 거지?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영민 맞다. 돕는다고 해도, 사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모른다. 2013년 5월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크라이스앤위스퍼스>를 보러 갔다. 무대에 객석을 만들어 놓은 구조의 공연이었다. 구조상의 문제로 휠체어로는 객석이 있는 공간에 진입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공연 스텝은 나를 도와 팔짱을 끼고 부축해 줄 테니 걸어 들어가자고 이야기했다.
수연 헐, 일어서서 걸어가자고?
영민 네. (영민, 수연 절래절래)
영민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팔짱을 끼고 부축해준다는 도움이 도움인 건가. 나는 결국 직원에게 안겨서 객석에 들어갔다. (조금 쉬고) 공연이 재미있어서 참았다.
수연 재미없었으면?
영민 재미없어도 참았다.
2014년 2월 8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 <닫힌 문>을 보러 갔다.
수연 닫힌 문.
영민 공연 시작 시간은 세 시였는데 10분 늦게 공연장에 도착했다. 늦게라도 입장할 수 있느냐는 말에 공연 스텝은 휠체어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수연 닫힌 문.
영민 일반 관객은 2층 통로석으로 중간입장이 가능하지만 휠체어로는 2층 통로석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연 이거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 4조 2항. 장애인에 대하여 형식상으로는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지 아니하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인 거네?
영민 네. 나는 같은 티켓값을 지불하고 중간입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의했고, 결국 원래 예매했던 좌석에 입장할 수 있었다. 도움과 항의가 없이는 접근성이 가능한 극장에서도 완전한 접근이 불가능하다. 내가 가지 말아야할 곳에 가는 것인가. 극장들은 장애인이 극장에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2017년 7월 1일.
수연/영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에 <킬미나우>를 보러 갔다.
수연 극장에선 우리의 좌석을 미리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친절했다. 하지만 영민이 앉을 좌석에 대한 설명을 영민에게 하지 않고 나에게 한다. 휠체어를 이렇게 올려서 여기에 두면 되고, 보호자는 여기에 앉으시면 된다고 한다. (짧은 한숨) 영민은 환자가 아니고, 나는 보호자가 아니고..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영민 동행인?
수연 동행인 좋다. 친구?
영민 친구 좋다.
수연 아마도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공연도 보고, 밥도 먹고, 산책을 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영민을 돕고 싶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함께 있고 싶고, 자주 보고 싶다. 그런데 이곳이, 물리적으로, 나에게 훨씬 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영민을 만나기 전까지 내 눈에는 수많은 턱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에겐 턱이 아니었으니 턱이 턱으로 보이지 않았던 거다.
수연/영민 턱.
수연 이라는 말은 나에겐 그냥 비유로 쓰는 게 더 익숙한 단어였다. 너네 학교 입시문턱 엄청 높지 않아?
영민 이 더위도 곧 지나가고 가을의 문턱이 다가오겠죠?
수연 근데 진짜 물리적인 턱들에 둘러싸여있는 거리, 이 세계를 제대로 보게 되니 뭐랄까
수연/영민 턱 (어이없다는 듯이)
수연 우리 둘 모두에게 이곳이 자연스러운 곳이었으면 좋겠다. 영민이 내게 밥을 사주었는데 카드에 서명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회전문에 있는 장애인버튼을 누르고 함께 천-천-히-
영민 들어갔는데, 옆문으로 들어오지 굳이 왜 거기로 들어오냐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연 우리가 서로에게 빚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공연을 보러 갈 때 영민에게 같이 가자고 고민 없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될 때 고민 없이 영민을 초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민, 수연 하이파이브)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적혀있다.
영민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입니다. 중략. 이곳은 누구나 들어와서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고, 하고 싶은 말도 남길 수 있는 상호소통의 공간입니다. 현장에 계시는 국민들의 생생한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이야말로, 좋은 정책을 만들고, 국민의 행복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수연, 일어선다.
수연 이것이 우리의 생생한 의견이다. 전국 100석 이상 극장들의 시설접근성에 관한 전수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조사 결과를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길 바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소극장들을 접근 가능하게 리모델링할 수 있는 재정이 확보되길 바란다. 향후 건설될 공연장의 경우 설계 단계서부터 세심하게 접근성이 고려되길 바란다. 넓은 통로, 턱없는 무대, 경사로 등을 갖추어, 접근성이 고려된 극장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극장이다. 영민, 앞으로 나간다.
영민 장애인이나 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대해 극장 관계자들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하는 것 아닌가. 극장 관계자들에게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교육을 신설하고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24조에 문화예술에서의 차별금지 조항은 종례 동법 시행령 제 15조보다 구체화하여 별도의 하위 법령을 입법해야 한다.
수연 음.. 좋은 말이네요. 하하하. 쉽게 얘기한다면?
영민 추상적인 표현 말고 최소한의 규정이라도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강제력 있게.
수연 음.. 예를 든다면?
영민 공공 기금을 받는 공연의 경우 최소 몇 회 이상 문자통역과 화면해설이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하거나 이상적인 것인가. 솔직히 애초에 대학로 대다수의 공연장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인지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화조차 내지 않을까.
수연/영민 악~~~~~!!
영민 나는 왜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쉬고) 생각하면 안 되나?
(영민, 수연 자리를 옮겨 선다)
수연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있다.
영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바라봄)
수연 지금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이 곳 노들장애인야학 2층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영민/수연 (수연은 수화로 말한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