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 110호 - <나, 조은별> 첫 월급을 받자, 가족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by 노들 posted Sep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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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블레이크’들의 외침, 두 번째


나, 조은별.
첫 월급을 받자,
가족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조은별 |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선별적 복지제도를 반대합니다. 복지제도 수급자로 오랜 시간 스스로를 검열했지만 알에서 깨어 나와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앞으로도 나는 나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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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양의무자가 되었습니다. 25년 평생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아오다가 이제 막 3월, 첫 월급을 받고 수급자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렇게 사회에 첫 발 나온 나, 조은별에게 국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부양의무자로 책정해 부양비를 뜯어간 것입니다. 한 달 월급에서 최저생계비가 넘는 금액의 15퍼센트를 부양비로 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만큼 가족의 수급비에서 부양비로 책정된 금액이 삭감될 거라고요.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어서 15퍼센트만 떼어가지만, 3년이 지나면 30퍼센트를 떼 갈 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다른 가구로 분리되면서 남아있는 나의 가족들이 받게 될 수급비를 계산해봤습니다. 77만원. 학령기의 학생이 있는 2인 가족이 어떻게 70만원으로 생활을 합니까. 하지만 나는 가족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단돈 몇 십 만원이라도 가족에게 돈을 주는 걸 국가가 알면 그만큼 또 수급비를 덜 주니까요.

25년 동안, 수급비를 받으면서 국가가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학기마다 꼬박꼬박 재학증명서를 갖다내고 아르바이트 몰래 하다 소득신고가 되어서 수급비가 삭감 되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내 통장 기록을 보고, 잔액을 조회하고, 끊임없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국가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니, 이제는 부양의무자라고 합니다. 나보고 가족을 책임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나도 나의 가정이 있고, 내 가정은 1인 가정이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모든 가정의 일을 다 합니다. 엄마는 수급비가 적게 나오게 되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수급비가 110만원가량에서 70만원으로 줄어드니 막막했겠죠. 3인가구로 110만원 받을 때도 돈이 너무 쥐꼬리 같아 용돈 달라고 차마 말을 못하고 소득이 안 잡히는 일만 골라했습니다. 이제야 이런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건데, 나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준 국가가 너무 싫습니다.


나 조은별은, 가난을 책임져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과 행복하게 살 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내 어깨가 무거워 죽기 전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제껏 국가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엄마와 꼭 약속했습니다. 부양의무제를 폐지시켜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내 인생을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동생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부양의무제 폐지돼야 합니다. 제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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