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자!

by (사)노들 posted Sep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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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자!

추석 귀성길, 고향 가지 못한 장애인들 터미널에서 차례상 올려
“‘대·폐차되는 모든 버스’ 저상버스로 교체” 국토부에 요구
2014.09.05 20: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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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장애인이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했으나 전동휠체어 크기에 비해 문은 턱없이 좁았다. 결국 전동휠체어 앞바퀴는 버스 문턱에, 뒷바퀴는 인도에 걸쳐진 채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아버지 납골당이 있어요. 그런데 2005년 아버지 돌아가실 때 가보고 못 가봤어요. 갈려면 승용차를 빌려서 가야 하는데 그건 번거롭고 버스는 엄두도 못 내니 갈 수 없죠.” (김정훈, 지체장애 1급)

 

김 씨는 안성에 가는 버스표를 손에 쥐고도 고속버스를 타지 못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은 높은 계단이 있는 고속버스 입구 앞에 멈춰서야 했다. 그렇게 김 씨를 비롯해 수많은 장애인은 설에 이어 이번 추석에도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80여 명의 회원은 5일 낮 1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15번 승차홈에 모였다. 2시에 15번 승차홈에서 출발하는 안성행 버스 10매를 예매해놓은 상태였다. 이들은 버스 탑승에 이어 “가족과 고향으로 가는 명절 버스는 장애인에겐 그림의 떡”이라며 ‘그림의 송편’ 퍼포먼스를 펼쳤다. 추석 연휴를 맞아 바삐 귀성길에 오르는 시민들 앞에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차례상을 올리며 “장애인도 버스 타게 해달라”라고 곡진히 빌었다.
 
2시, 안성행 버스가 들어섰다. 그러나 휠체어 탄 장애인은 역시나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젊은 남성 서너 명이 전동휠체어를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전동휠체어 크기에 비해 문이 턱없이 좁아 휠체어 앞 발판이 문턱에 걸렸다. 휠체어 뒷바퀴는 인도에, 앞바퀴는 버스 문턱에 걸쳐진 채 휠체어는 아슬하게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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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시민들이 서둘러 버스에 탑승하는 사이, 그 곁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자신의 손에 쥔 버스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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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증장애남성이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계단 문턱에 내려앉아 “나도 버스표를 샀다. 내가 아직 타지 못했는데 왜 출발하려 하느냐!”라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시 10분, 14번 승차홈에 아산행 버스가 들어섰다. 버스표를 끊은 비장애인 시민들이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고 그 곁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자신의 손에 쥔 버스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버스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한 중증장애남성이 휠체어에서 내려 버스 계단 문턱에 내려앉았다. “나도 버스표를 예매했다. 내가 아직 타지 못했는데 왜 출발하려 하느냐!” 그가 항의했다. 문을 닫지 못하니 출발은 지연되고 있었다. 마침내 버스에 탑승해있던 한 시민이 “왜 여기서 남한테 피해 주며 이러느냐. 당신 때문에 못 가고 있지 않으냐. 버스 회사 가서 항의하라”라며 따져 묻자 이에 장애인은 “당신은 10분 늦은 거지만 우린 평생을 버스도 타지 못한다”라며 맞받아쳤다.

 

2시 20분, 25번 용인행 승차홈. 그곳엔 승객을 실은 버스가 빠져나간 후 방패를 든 경찰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전장연은 안성, 아산, 용인행 버스표를 각 10매씩 예매했으나 결국 누구도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단지 장애인도 추석에 고향 가자는 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약속한 대로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마련하라는 것”이라며 “국토부에 면담을 요청했다. 국토부가 면담에 임할 때까지 투쟁하자”라고 외쳤다.

 

2005년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다. 동법 제3조(이동권)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광역버스, 농어촌버스, 고속·시외버스 등에도 장애인 탑승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는 시내버스뿐이다. 시내버스에만 계단 없는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조차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 명시된 저상버스 도입률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전장연은 이동편의증진법의 전면개정을 요구한다. 현재는 저상버스 등의 도입을 ‘예산 범위 내에서 재정 지원’하게 되어 있다. 이를 ‘대·폐차되는 모든 버스’에 적용토록 개정하는 것이다. 즉, 버스 평균 수명이 10년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10년 내로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 혹은 리프트 등 장애인 탑승시설이 설치된 버스로 교체될 수 있다.

 

전장연 조현수 정책국장은 “고속버스에만 휠체어 탑승시설을 갖춘다고 한들 장애인접근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며 “국토부는 2015년부터 고속버스뿐만 아니라 시외버스 등 모든 버스에 대해 시범사업을 운영하라”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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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 앞바퀴는 버스 문턱에, 뒷바퀴는 인도에 걸쳐진 채 휠체어가 아슬하게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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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내버스 외에 고속·시외버스 등엔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있지 않아 휠체어 탄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 좁은 문과 높은 계단으로 버스에 오르지 못하자 휠체어 탄 장애인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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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회원들이 “가족과 고향으로 가는 명절 버스는 장애인에겐 그림의 떡”이라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15번 승차홈에서 ‘그림의 송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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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바삐 귀성길에 오르는 시민들 앞에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버스터미널에서 차례상을 올렸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장애인도 버스 타게 해달라”라고 곡진히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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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20분, 25번 용인행 승차홈. 전장연 회원들은 용인행 버스표 10매를 예매했으나 타지 못했다. 승객을 실은 버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방패를 든 경찰이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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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의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 편안하시죠? 장애인들의 투쟁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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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80여 명의 회원은 5일 낮 1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15번 승차홈에 모여 '장애인도 고속버스 타고 추석에 고향 가고 싶다'라며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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