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음식보다
따뜻했던 카레 4160그릇
2016년 12월 31일 밤에 열린
‘세월호 가족들의 심야식당’
박정환 | 운동이라면 몸을 쓰는 운동도 사회를 바꾸는 운동도 모조리 사랑하는 청년입니다. 3주 후 입대해요!
안녕하세요, 신임교사 박정환입니다.
다들 저를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우선 제 나이는 21살입니다. 이제 대학교에서 1학년을 마쳤어요! 저는 운동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태권도, 축구, 배구 같은 걸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원래 역사 공부를 좋아해서 사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이런 제가 노들야학에 오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냥 대학교 친구들과 추억을 쌓으려고 온 날에 노들야학에서 후원주점을 하고 있었거든요. 각자 흩어져서 다른 일을 했었는데, 저는 서빙을 했습니다. 무언가, 그 전에 알지 못했던 걸 발견한 순간이었어요. 노들야학의 후원주점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다 같이 술과 음식을 즐기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제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가 잘 알고 있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거든요. 그때부터 노들야학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를 후원주점 이후로도 틈틈이 수업보조나 정자 누님의 수학 과외 선생님(?)을 맡으면서 노들야학과 얇은 실 같은 인연을 이어나가게 되었네요. 지금은 은전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신임교사로 등록해서 인준을 받았습니다(짝짝)!
얇은 실이라고 말했지만, 노들야학에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 지낸 거 같습니다. 수업보조를 들어가서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학생 분들과 인사를 했고, 후원주점에서 서빙을 하면서 칵테일을 얻어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진 기억, 광화문을 가득 채운 집회 참가, 너무나 추운 날씨였지만 진수 선생님과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농성장 지킴이. 특히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의 [세월호 가족들의 심야식당]에 노들야학 교사로 함께 참여한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은 처음에는 저에게 별 감흥이 없는 그저 그런 사고였던 것 같습니다. 무척 부끄럽게도 ‘나는 수학여행을 그 전에 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주변 친구들이 그 일을 생각하며 기숙사 침대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에 ‘유난 떤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저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캠퍼스 내에서 접할 수 있었던 노란 리본에 무언가 마음이 동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백남기 농민 추모 행진을 시작으로 저는 우리 사회 속의 여러 사건 사고와 부조리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노들야학 교사회의에서 [세월호 가족들의 심야식당]의 제안서를 보았고, 투쟁의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대학교 친구들과 이 자리에 꼭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제안한 친구들은 흔쾌히 수락했고, 심야식당 개시 전날 오후 저희는 식당 준비를 위해 모여서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참여연대 지하 홀에서 시작한 일은 야채 손질, 짐 나르기를 포함한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짐 나르기가 많이 무거워 힘들었지만, 유가족 분들과 함께하는 그 자리에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셔서 추운 날씨지만 마음이 따뜻했고, 무거운 짐을 날랐지만 깃털같이 가벼운 발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린 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와서 일을 하는 모습은 한층 저희를 흐뭇하게 하기도 했죠.
개시 전날 사전 준비를 마치고, 저희 일행은 식당 배식과 광화문 행진의 교통정리를 위해 다시 참여연대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추운 날씨였지만, 호기롭게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나온 저는 다음 날에 당연히 감기에 걸리고 말았죠(슬픔). 2016년의 마지막 날, 무수히 많은 촛불을 제 앞으로 스쳐 보내며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손발이 얼 것 마냥 춥던 한 해의 마지막 날,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따뜻했던 카레 덕에 우리는 함께하고 있구나. 이 카레가 존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과, 미안함이 있었겠구나. 뭐 이런 생각들을요(웃음).
2017년 3월 10일, 우리는 광화문 투쟁의 끝을 맞이했습니다.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가 탄핵 인용 사유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마지막 날에 느낀 따뜻함, 흘렸던 눈물을 인양된 진실과 함께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밤입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신 노들야학의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