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과 함께 한 ‘불확실한 학교’
최태윤 | 작가이자 교육자. 2013년 뉴욕에 School for Poetic Computation(시적연산학교)를 공동 설립하여 운영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근래에는 장애와 정상의 벽을 ‘탈학습’하고 예술과 기술의 접근성과 다양성을 향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8월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램프와 접근성 매핑’ 세미나에 노들야학을 초대한 최태윤입니다. 이 세미나를 함께 진행한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은 기술과 장애의 연결점에 집중하는 디자인 연구자에요. 역동적인 모습의 장애인 아이콘을 대중화하는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헨드렌은 메사추세스 주에 있는 올린 공과대학(Olin College of Engineering)에서 보조공학과 적응성 디자인(Adaptive design)을 가르치고 있어요. 엘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는 자신의 장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국인 안무가에요. 그는 의사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자신의 예술의 시작점이라고 당당하게 말해요. 그리고 휠체어를 자기 신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휠체어를 타고 무대 위에서 움직이면서 아름다운 공연을 선보여요. 셰퍼드는 10년 전까지는 중세 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였지만, 다른 장애인 무용수의 공연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노들야학과 함께 진행한 세미나는 ‘SeMA 비엔날래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여름 캠프인 ‘불확실한 학교’의 행사였어요. 노들야학 한명희 선생님 및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분들이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평소에 좋게 생각하던 노들야학의 활동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가까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불확실한 학교’에는 특별한 감각과 각기 다른 의사소통 방식, 움직임,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어요. 작가, 사회복지사, 활동가, 장애인, 비장애인 등으로 다양하게 섞여 참가했지요. 교과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스토리텔링 중심의 테크놀로지 관련 워크숍 5회,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과 함께 현대사회에 관한 비판적 주제를 다룬 세미나 5회, 참가자들의 전시 준비를 위한 세션 3회로 구성되었어요. 사라 헨드렌과 앨리스 셰퍼드는 ‘램프와 접근성 매핑’ 세미나에서 휠체어 사용자들의 접근성 문제를 다루었어요. 노들야학 선생님과 학생분들,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 일반인 참가자 총 40명이 북서울미술관 근방 걷기 투어에도 참여했고요. 휠체어로 이동하는 이들과 두 다리로 걷는 이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함께 걸어가는 투어를 통해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미묘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요소를 관찰하는 법을 익혔어요. 올바른 움직임에 관한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회였지요. 노들야학의 한 참가자는 “우리는 늘 그룹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몸은 아니다. 우리가 함께 걸으면 우리 몸은 공간에 확장한다.”고 말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1월 10일입니다. 제가 사는 뉴욕도 많이 추워졌어요. 어제 아침, 미국 대선 결과를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과에요.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사람이지만, 특히나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해온 사람이에요. 예컨대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의 기자이자 선천성 관절만곡증이 있는 세르지 코발레스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조롱하기도 했어요. 또한 그가 선거를 앞두고 쓴 책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의 제목에서 ‘불구’라는 단어의 선택은 사회의 문제점을 신체의 결함에 비유해요. 이는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지요. 클린턴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장애인과 소수자를 위한 사회 환경이 조금이나마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했어요. 클린턴은 장애인의 직업권을 보장하는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목적을 지속해서 확대하는 것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어요. 어제 투표하러 가면서도 사라 헨드렌이 만든 장애인 아이콘이 투표장 가는 길에 설치된 것을 보면서 뿌듯하고, 조금 더 나은 미래로 갈 것이라고 희망했어요. 이런 희망들은 냉정한 현실에 부딪히며 깨졌지요. 하지만 무력함에 빠지기보다는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8월의 노들야학과의 만남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어요. 사라 헨드렌과 저는 세미나 후에 노들야학을 방문해서 한명희, 김명학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사라 헨드렌이 디자인한 이동식 경사로를 노들야학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답니다. 아래에 세미나의 질의응답을 요약 편집해서, 우리가 나눈 대화를 조금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램프와 접근성 매핑’ 세미나 질의응답 기록(2016년 9월 3일)
노들야학 교사: 오늘 감사드려요. 저희 야학에 있는 학생 분들은 대부분이 중증장애인이십니다. 어떤 특정한 신체 부위에 장애가 있다기보다는 거의 전신을 사용하지 못하시거나 떨림이 심하시거나 언어장애가 있으신 분까지 복합적으로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계세요. 사라 헨드렌 작가님은 디자인을 하시거나 퍼포먼스 공연을 하실 때 어떤 복합적인 장애에 대한 고민이나, 복합적인 장애에 초점을 맞춰서 예술을 창작하시는 부분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사라 헨드렌: 질문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발달장애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런 복합적인 장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시에 아트링크(Artlink)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복합적 장애가 있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함께 작업을 합니다. 이분들은 아주 미세한 시작점, 느낌, 표현에 집중합니다. 이것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거나 자원봉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또 다른 그룹은 어댑티브 디자인 어소시에이션(Adaptive Design Association, ADA)이라고 하는 뉴욕에 있는 그룹이고요, ADA의 경우에는 장애인의 필요에 맞춰서 특화된 가구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로 하시고 희망하시는 것으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저도 노들야학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문화의 역할, 문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발표에서 보여주신 것은 굉장히 직접적인 정치적 개입이죠. 이런 시위와 같은 실천의 역할도 있지만 문화적인 상상력, 이런 담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다른 것, 그리고 이런 행위와 사건들에 어떠한 방법론들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노들야학 교사: 노들장애인야학에서는 과격한 시위와 활동도 하지만 저희의 주요 활동은 저녁에 이루어지는 수업이 있고, 특활 수업 안에 있는 미술, 연극, 방송, 음악대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됩니다. 저희가 마로니에 공원 뒤쪽에 TTL 무대로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가 없었던 때가 있었어요.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로서 장애인을 고려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거죠. 저희가 ‘노란들판의 꿈’이라는 문화행사를 매 해 진행하고 있어요. 그 행사를 1년에 한 번씩 준비하면서, 행위의 주최자로서, 우리들만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속도의 공연이고, 그것이 야학 내에서 수업이나 모임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들야학 학생: 노들장애인 야학의 당사자로서, 그리고 언어장애가 있는 당사자로서 얘기하자면요, 장애인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활동을 할 때 어려운 점이, 그 이유가 불완전한 몸에 대한 부끄러움이 문화적으로 만연해 있기 때문이잖아요. 대한민국에서는 그걸 깨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모르거든요.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엘리스 셰퍼드: 이 기회에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회 정책과 사회 구조에서 우리가 가질 수 없다고 했던 것들, 우리가 부끄럽다고 생각한 것들을 예술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그것이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술이 어떠한 열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열림은 정책 변화와 사회 참여를 포함하고, 또한 그보다 더 큰 의미의 변화 까지도 포괄합니다. 저에게 예술이란 이런 부끄러움을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부끄러움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우리에게 덧씌워지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부끄러움의 방향을 바꿔서, 그렇게 우리를 바라봤던 사람들이 잘못되었고, 그들의 시선이 편협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라 헨드렌: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 많을 때, 직접적으로 결과를 볼 수 없는 것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술, 비평적 디자인, 퍼포먼스 등의 특징은 그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새로운 가능성들로 연결되기도 하죠. 저는 그렇게 사람들과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우리가 대화하는 방법을 바꾸는 그 상상력을 믿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과 시간과 노력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꿨을 때는, 어떤 가시적인 척도로 측정될 수 없는 더 깊은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들야학 학생: 제 경우에는 연극이라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도 정상성이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 안으로 진입하는 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노들야학에 와서 정치적 활동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좀 걱정이 됩니다. 뇌성마비나 언어장애인과 소통을 시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들과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글로 소통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소리로 대화하고 싶은데 이런 기술을 연구하거나 도구를 제작하실 생각은 없는지요? 의사소통에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해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라: 굉장히 여러 가지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몸의 어떠한 움직임이나 동작을 음성이나 소통 가능한 소리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 입니다. 어떻게 하면 당사자의 필요에 의해서 그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실이나 제가 관여하고 있는 여러 기관에서는 개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맞춰진 디자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