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피플퍼스트 대회
한혜선 | 노들야학에서 상근자자로 일하며, 수학5반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노들의 수업과 급식을 사랑합니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란? 197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주도하는 자기권리주장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였습니다. 대회에 참석한 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mentally retarded’(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고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행사를 ‘People First’대회로 명명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으로 ‘피플퍼스트’라는 이름의 운동이 조직돼 나갔고, 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장애인)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
노들은 작년 9월부터 10월 한 달 사이에 일본 피플퍼스트, 한국 피플퍼스트, 노들 피플퍼스트 이렇게 3개의 피플퍼스트 대회(발달장애인 당사자 대회)를 다녀오고 또 치러냈습니다. 올해 피플퍼스트 대회는 노들에게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경험입니다. 저는 3개의 대회를 각각 다른 위치와 무게로 참여하였습니다. 연수 차원으로 다녀온 일본 피플퍼스트, 조력자로 참여한 한국 피플퍼스트, 실무자로 치러낸 노들 피플퍼스트. 제가 경험한 2016년 피플퍼스트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6년 일본 피플퍼스트 전국대회 참가 연수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일본 피플퍼스트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야학 상근자인 진수, 유미와 함께 요코하마에 다녀왔습니다. 노들야학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팀에 속해 다녀왔는데, 참가 신청을 늦게 하는 바람에 비행기 표와 숙소를 따로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래도 유미와 진수가 애쓴 덕분에 저가 항공과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면서 여행사를 통해 일괄 처리한 한자협 팀 회비보다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첫날 일정은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한자협 팀과 합류해 7월에 발생한 가나가와현 시설 거주 장애인 집단 살인 사건 현장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첫 해외 나들이에 첫 풍경이었으므로 가나가와현으로 가는 길이 조금은 설레야 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울창한 나무들과 구불구불 산길이 이어지면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매한가지로 시설은 이렇게 외로운 곳에 있구나’라는 생각에 차창 밖의 경치가 서글펐습니다. 이 외로운 곳에서 조용한 새벽 잠자는 시간에 느닷없이 당한 죽음들을 생각하니 너무 서럽기도 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사건이 일어난 시설은 산속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것은 아니고, 주변에 집들도 간혹 있는 한적한 도로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시설 앞에는 참배할 수 있는 분향소 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던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시설 안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한 장애인들이 아직도 살고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날의 충격으로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이들, 옆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다 살아남은 이들. 그들에게 그 밤은 얼마나 무섭고 슬픈 밤이었을까. 단지 한 사람의 돌발적인 만행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끔찍한 사건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과 많이 닿아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뭘 할 수 없는 존재, 지역에서 같이 살 수 없고 시설에서 따로 갇혀 있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한, 이런 끔찍한 일은 집에서 부모에게 목 졸려 죽거나 시설에서 맞아 죽거나 하는 형태로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추모식과 헌화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하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자유 일정으로 보내고, 9월 21일 대회 첫째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오전은 요코하마에 머무는 중 유일하게 비가 안 온 반나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코하마에 있는 내내 비에 젖은 운동화와 씨름을 했지요. 그날도 전날 저녁에 뭉쳐 넣은 신문지를 빼내고 드라이기로 겨우 조금 말린 운동화들을 신고 아침 일찍 서둘러 걸어서 대회장인 오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로 갔습니다. 일찍 서두른 덕분인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가는 길에 야마시타 공원도 산책하고,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아침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대회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대회장 입구에는 접수를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고, 대회 티셔츠를 파는 부스와 지역별 작업장에서 만들어 온 물건을 파는 부스에도 사람들이 몰려 활기를 띠었습니다. 일본에는 시설 장애인들이 13만 명 정도가 있는데, 이들은 거의 이 대회에 참석을 못하고, 참석자의 대부분은 작업장에 있거나 그룹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자원활동을 하는 스텝들도 대부분 거기서 일하는 종사자들이구요. 일본에는 전국에 장애인 작업장이 많다고 합니다. 대회 참가비가 1인당 1만엔이 넘고 교통비에 숙박비까지 더하면 비용이 꽤 되는 편인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모두 자부담으로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작업장에서 버는 돈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사회자가 피플퍼스트 대회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으로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피플퍼스트 대회는 당사자 대회이다.” “지원자(조력자)는 발언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모를 때만 지원자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 “모두가 알 수 있는 말을 하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로 실행위원들을 꾸리고 거의 1년 동안 대회 준비를 하는데, 7월 말에 벌어진 사건으로 주제가 모두 가나가와현 장애인 시설 ‘쓰구이야마유리엔’ 집단 살인사건에 대한 추모의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주제 발표의 첫 번째는 전문가의 발표 순서였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지역으로, 시설에서 지역으로 나가자’라는 제목이었는데, 이어지는 내용은 너무 학술적인 내용이어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팀 세 명의 통역자 중 한 명은 중간에 포기했고, 일본인 통역자도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대회에서 어떻게 이런 발표를 하는지, 듣는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표에 화가 났습니다. 이 대회에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하자’는 중요한 규칙이 있는데 말입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당사자 한 분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습니다. 화가 난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게 사건 내용인가?”라고 물었고, 발표자는 정중하게 여러 번 사과를 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주제가 바뀌고 급하게 발표자도 바뀌면서 사전에 내용을 조율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다음 순서로 대회의 실행위원들이 참사 현장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보고, 4명의 토론자들과 사회자가 돌아가며 발표도 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상에 담은 발언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우리 동료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할 수 없다.” “그 시설에 지금도 있는 동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도 잊지 말자.” 그리고 발언자 모두 이번 사건의 언론 보도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안 나오고 ‘장애인들’이라고만 표기한 것에 대해 분노하며 한마디씩 했는데, “이번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왜 발표하지 않는가.” “내 친구가 쓰구이야마유리엔에 있는데 이름이 안 나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죽으면 꼭 이름을 밝혀 달라.”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토론자들은 “쓰구이야마유리엔 사건을 규탄한다”는 내용과 그 사건 이후의 두려움과 슬픔,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얘기했습니다. “장애인은 필요 없다는 가해자의 말은 우리를 향하고 있다. 장애인은 없어져버리라는 생각에 맞서 싸워나가자.” “우리들의 생활을 국가와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라.” 그리고 “왜 시설에 모여 살아야만 하나?” “시설을 없애자.” “시설을 없애고,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이어서 토론자들이 겪었던 차별과 학대의 구체적 경험들, 시설에서 겪었던 부당한 경험들을 얘기하자 여기저기서 “화이팅! 화이팅!” 외쳐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토론 발표가 끝나고 참석자들의 자유발언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작년보다 손을 드는 사람도 적고 추모 분위기로 차분하다고 옆에서 유미가 말해줬는데, 그래도 여기저기서 말을 하겠다고 손을 들어 자기의 바람이나 차별의 경험,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한 얘기들을 해나갔습니다. 한국에서 온 당사자들도 손을 많이 들었고 발언 기회를 얻어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헌화를 하고,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을 위로하는 추모의 종이학을 무대 위에 가득 올려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음 일정인 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정된 호텔로 이동을 했습니다. 연회장은 화려하고 컸지만, 참석자가 워낙 많아 앉지도 못하고 비좁게 서있어야 했습니다. 뷔페 음식이 차려졌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좀 기다렸다가 가려했더니, 음식이 더는 안 채워지고 떨어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참가비 중 1인당 6만 원 정도가 교류회 뷔페 값이었는데 접시 한 번을 못 채우고 음식이 떨어지다니,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 뻔 했습니다. 그래도 먼저 담아온 사람들의 음식을 나눠먹으며 후원 받은 기린 맥주로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류회니까 ‘교류’를 해야 했습니다. 당사자 분들이 여기저기를 돌며 자기소개를 담은 명함을 주고받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교류’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명함을 줘서 고맙다고 하며 받았는데, 저에게는 명함이 없다고 하자 주었던 명함을 다시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장애여성 공감에서 당사자로 참석한 분들이 명함을 주고받고 일본말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학생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이런 자리에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다른 한편 ‘우리 학생들도 저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며 다닐 수 있을까’라는 염려까지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류회가 끝나고 노들야학의 3인은 뷔페의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주변 음식점에서 저녁과 맥주를 먹었습니다. 피플퍼스트에 대한 느낌들도 나누었는데, 이런 대회를 뭔가 판에 박힌 여느 행사들처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얘기도 나누고, 유미는 대회장 안에서 뭔가를 주장하는 방식으로만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에 요구안을 전달하거나,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 『비마이너』 기사에서 봤던 것 같은데, 일본 피플퍼스트 대회에 계속 참여했던 대구 활동가가 몇 년 동안 ‘시설학대’ 주제가 똑같이 나오는데 해결된 것은 없다고 하면서,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TV에서는 계속 태풍 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9월 22일 대회 둘째 날 아침에는 아니나 다를까 빗줄기도 더 굵어지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습니다. 둘째 날 프로그램인 분과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회장인 오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까지 걸어가는데,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비바람에 우산은 훌러덩 뒤집어지고, 목에 건 이름표는 휙휙 돌아 등짝에 달려있고, 겨우 조금 말려 신고 나온 운동화는 물에 푹 젖고, 옷도 비에 홀딱 젖은 우리 모습이 서로 웃겨서 연신 깔깔거리며 대회장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헉, 그런데 우리 분과회 장소는 여기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전날 교류회를 했던 호텔로 다시 가야 했습니다. 그 호텔은 우리 숙소 바로 코앞이었는데 말입니다.
분과회는 ① 그룹홈 ② 전쟁 반대 ③ 당사자의 기분, 이야기를 듣는다: 자립을 즐기는 법 ④ 오오후지엔의 학대사건 ⑤ ‘~다!’ 코너 ⑥ 장애인권리조약 ⑦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자 ⑧ 알림으로 사회를 바꾼다! 팬지 미디어 ⑨ 힘이 나는 이야기 ⑩ 생활보호와 연금 ⑪ 여가활동, 이렇게 11분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우리 한국 팀은 3분과에 속해 참여했습니다. 3분과 주제는 ‘당사자의 기분, 이야기를 듣는다: 자립을 즐기는 법’이어서 줄곧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였습니다. 발표자들은 자신이 자립하게 된 사연, 자립하기 전과 비교해서 자립한 후의 즐겁고 행복함, 하고 싶은 꿈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발표자들이 준비한 OX퀴즈도 했는데, 발표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좋아하는 연예인, 싫어하는 것,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하는 것, 이런 문제들을 맞히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굉장히 즐거워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당사자들도 “완전 신난다, 최고다”라며 신나하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내내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고개를 꾸벅거리며 조는 사람도 있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나뉘어 분과회를 마치고 다시 오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 모여 폐회식을 가졌습니다. 폐회식 첫 순서로 참여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어제 지각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구체적으로 좋은 점을 얘기해주는 분들도 있었고, 힘차게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어 마이크를 받고는 말은 못하고 쭈뼛거리다 조그만 소리로 좋았다고만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국 당사자들도 발언 기회를 얻어 일본 만화 좋아하고, 일본 라면 맛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계속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를 끊고, 사회자가 대회 슬로건 발표에 이어 피플퍼스트 선언을 했고, 이번에는 덧붙여 피플퍼스트 가나가와(이번 장애인시설 집단 살인 사건이 난 지역) 선언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대회 개최지로 발표된 히로시마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틀간의 일본 전국 피플퍼스트 대회를 마쳤습니다. 한자협 팀은 저녁에 다시 모여 뒤풀이를 하고 참여 소감을 나누며 일본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대회에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력자로 참가한 것도 아니다보니 일본 피플퍼스트 대회는 좀 여유롭게 다녀온 편입니다. 외국을 나가 본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저는, 일본어를 많이 못하는 유미와 일본어를 조금밖에 못하는 진수의 도움으로 말을 안 하고도 5일 동안 일본에서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내내 우리 낮 수업 학생들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온 다른 팀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그랬다면 이렇게 편하게(?) 다니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내년 히로시마 대회는 우리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보고 싶습니다.
2016년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 참가
10월 21~22일에는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가 경남 창원에서 열렸고, 노들도 참석을 했습니다. 당사자로는 주원, 지민, 경남, 소민, 그리고 조력자로는 진수, 임당, 여의와 함께 제가 참석을 했고, 노들센터에서 당사자 수지와 조력자 미진 샘이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상근자 세 명만 다녀온 일본 피플퍼스트와 달리 당사자들과 함께한 1박 2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었고,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졌습니다. 아침 기차를 타야해서 출발부터가 큰일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출발 계획을 세우고, 당일 아침 전화로 깨우고, 서울역까지 혼자 못 오니까 야학에서 만나서 오고, 집 근처 가서 같이 오고, 유일하게 혼자 올 수 있는 주원이형은 혼자 오면서 계속 전화하고. 이렇게 정신이 없었지만 약속한 시간에 모두 모인 서울역에서의 만남은 감격적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진이 다 빠졌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창원에 도착해서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택시를 소민이 안타겠다고 버텨서 먼저 택시에 탄 사람들은 택시로 가고, 남은 사람들은 소민을 설득하다 안돼서 버스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타고 대회장으로 갔습니다.
컨벤션센터 안의 대회장은 크고 화려했습니다. 개회식을 끝내고 OX퀴즈를 진행했는데 가장 신나고 들썩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주원이형과 지민이형은 계속해서 “저요! 저요!” “여기 서울~”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애타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손을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지목을 못 받아 답을 맞힐 기회가 없어 다들 너무나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답이 뭐냐고 물어볼 때마다 답은 모른다고 해서, 사회자의 지목을 받았더라도 맞히지는 못했을 텐데, 아무튼 무지 아쉬워하고 우리를 지목하지 않은 사회자를 탓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주제발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각 지역에서 발표자들이 PPT를 준비해 와서 발표를 했는데, 자신이 겪은 ‘차별과 학대’를 발표할 때는 힘내라고 외치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발표 주제는 이 외에도 ‘장래희망’과 ‘취미’ 등 다양했지요. 시작과 끝, 휴식 시간까지 시간표대로 정시에 진행하는 행사는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류회 시간이 되어 차려진 뷔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재빨리 학생들과 줄을 서서, 되도록 음식을 가득 담으라고 당부하고, 공들여 알차고 신속하게 음식을 담아왔습니다. 소민이는 계속 배가 고프다고 하더니 정말 접시를 들고 음식을 마셔버리는 ‘접시 원샷’ 신공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두 접시까지는 꼭 먹어보자고 서로 격려하며 음식을 빠른 속도로 흡입했는데, 다행히도 일본과는 달리 떨어진 음식은 계속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이러다가 체하겠다며 서로를 토닥이며 조금은 차분하고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낮 수업 시간에 만들어온 각자의 명함을 들고 인사를 하러 다녔습니다. 신나서 명함을 열심히 주고받으며 인사를 다니기도 하고, 처음에 조금 다니다가 돌아와 자리만 지키기도 하고, 조력자 뒤에 바짝 붙어 다니기도 했지요.
장기자랑 시간에 서울팀이 무대에 오를 때 소민이가 무대에 안 올라간다고 버티다가 힘겹게 올라가더니, 올라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춰서 빵 터졌고, 주원이형, 지민이형, 경남, 수지까지 연습한대로 신나게 노래하고 춤을 췄습니다. 축하공연에 이어 경쾌한 음악으로 클럽 분위기가 조성되자 모두들 하나같이 무대 위와 주변에서 신나게 춤을 추면서 대회 첫째 날을 마쳤습니다.
대회장에서 숙소는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 같이 힘들어하는 소민이를 응원하며 걸어서 숙소를 찾아갔는데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둘째 날, 폐회식 때 소감나누기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무대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도 주원이형과 지민이형, 수지가 무대에 올라 소감을 얘기했습니다. 소민과 마이크를 싫어하는 경남은 나가지 않았고요. 폐회식 끝 순서로 다음 개최지가 서울로 발표되자 서울팀은 모두 무대에 올라 준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모두들 내년에는 서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모든 대회 순서를 마쳤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역에서 소민이가 지쳐서 기분이 안 좋았는지 기차 타기 직전에 타지 않겠다고 버텨 기차를 놓칠까봐 가슴을 졸였는데, 여의의 놀라운 능력으로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조력자로 참석한 피플퍼스트는 힘도 들고 일도 많았습니다. 임당, 여의가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대회는 흥겨운 자리였고, 학생들도 모두 재밌어 했습니다. 진행 방식이나 틀은 일본 피플퍼스트를 거의 그대로 따온 듯 했습니다. 내년에 서울에서 진행하면 사업비 지원도 받을 수 없고 하니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는 못하겠지만, 오히려 새로운 피플퍼스트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란 기대도 있습니다.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 준비를 위해서 서울지역 준비모임을 몇 번 가졌는데요, 거기에 참석한 우리 야학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내거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내년 대회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준비할 텐데 벌써부터 주원이형이 추진위원장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동센터 대범 씨에게 밀릴 것 같다고 염려도 하면서요.
2016년 노들 피플퍼스트 대회 개최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에 앞서 10월 7일에는 ‘2016 노란들판의 꿈’ 사전 행사로 노들 피플퍼스트 대회를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듣도 보도 못한 피플퍼스트 대회였습니다. 우선 장소부터가 화려한 대회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치른 대회였습니다. 일본 대회나 한국 대회의 형식을 따르지는 않았고, 우리의 내용을 담을 수 있게 꾸렸습니다. 임당과 낮 수업 강사들이 학생들과 준비하면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작년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직접 무대에서 발표를 했는데, 학생들이 막상 무대에 서니 연습 때처럼 말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낮 수업 시간에 자기 얘기 하는 것을 그대로 무대에 옮겨 보았습니다. 일명 노들 봉숭아 학당. 마이크를 싫어하는 경남을 위해서는 경남이 요청한 소형 메가폰을 준비했고, 교실의 책상을 그대로 옮겨와 옹기종기 앉아 자신의 의견들을 얘기했습니다. 마이크에 대고는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메가폰이라 당당하게, 누구는 또 조금은 수줍게, 때로는 흐름에 맞지 않는 엉뚱함으로, 줄곧 딴 짓만 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무슨 당사자 선언이 있을까. 자기의 언어를 가지고 말을 만들어서 선언하진 못하지만, 당당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보여주는 것. 이게 자기 선언의 시작일 수 있진 않을까. 임당은 이렇게 무대 중심의 행사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 내년에는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피플퍼스트의 가장 빛나는 순서는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거리행진’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에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깃발과 우리의 주장을 담은 갖가지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습니다. 인강원에서 탈시설을 준비하는 분들이 초청되었는데 ‘푼돈들’ 초청공연 시간에도 일어서서 흥겹게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더니, 거리행진에서도 목이 터져라 자기의 목소리를 외치며 함께 하셨습니다.
대열 맨 앞까지 갔다가 뒤가 궁금해서 다시 우리에게 오기를 반복하는 주원이형,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는 주먹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지민이형, 집회를 좋아하는 경남이, 힘들어서 뒤로 쳐지다가도 구호를 외칠 때는 야무지게 외치는 소민이, 오랜만에 나와서 발개진 얼굴로 함께한 혜운 언니, 단짝 친구 정이와 함께 나란히 전동휠체어를 타고 행진하는 준수. 모두 무대에서 수줍어하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소리쳐 외치는 모습들이 멋진 행진을 만들어 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수연이 아파서 참석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세 번의 피플퍼스트 대회를 참여하고 나니
올해 이렇게 세 개의 피플퍼스트 대회를 참여했는데, 아직 피플퍼스트가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피플퍼스트가 과연 중요한 행사인지, 피플퍼스트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 입니다.
일본이나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를 보며 여타의 행사들을 따라하는 듯 느껴져 아쉬워했던 것은 어쩌면 내 식대로 재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집회나 큰 행사들이 신체적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왔는데, 발달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리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언어로 얘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어디서나 지시와 가르침을 받기만 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기의 목소리로 맘껏 외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소중한 자리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실행위원이나 추진위원으로 주제를 잡고 발표를 준비하며 주도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자기소개 명함을 만들면서 행사를 기다리는 시간들. 그리고 전국에서 모여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진행과 발표를 하고, 또 누군가는 “저요~저요~”하면서 말을 하고자 하고, 비싼 음식도 먹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 자기를 소개 하고, 그런 가운데도 어울리지 못하고 조용히 있거나 못 알아들을 소리를 지르고 딴 짓만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만의 시간으로 채워진 행사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행사장을 벗어나면 차표를 끊고, 숙소를 잡고, 이동하는 일부터 여러 일을 본인이 주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에게 차츰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우리 노들 학생들은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당사자들은 진행이나 발표를 맡지 못하고 소외되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들도 자기의 목소리로 말하고,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또 노들 피플퍼스트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피플퍼스트에 관련된 이 글을 쓰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복잡하게 엉켜서 생각이 정리가 안돼어 그런 거라 여겼는데, 글을 쓰면서 보니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생각이 없어서이고, 복잡하게 엉켜서가 아니라 너무 몰라서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달장애인의 당사자성은 무엇인지,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서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고민하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옆에서 주원이형이, 지민이형이, 혜운언니가, 경남이가, 소민이가 답을 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