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천천히 즐겁게 함께
박여의 | 야학 1년차 교사이자 최유리 학생의 활동보조인. 6년째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큰일. 싫어하는 것은 몰카와 생선 그리고 오르막길. 취미는 상대묘사(주로 성대모사)로, 최유리 학생의 어머니 박해숙 님의 성대모사가 제일 자신 있음.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박여의입니다. 현재는 대학원생이기도 하고 노들야학의 낮 수업 및 저녁 수업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 5일 이상 노들에 있는데, 집이 너무 멀어 반 정도는 노들 거실(?)의 자바라 안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주 거주지는 벽제이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효녀 코스프레’를 즐겨하기 때문에 외박권을 최소 하루 전에는 결재 받았었는데, 요즘은 1시간 전에도 결재를 올려서 엄마가 벼르고 있네요. 그리고 지금은 원고를 빨리 주지 않아 교사대표 진수 형이 벼르고 있는… 아, 미안합니다.^^;
사실 저는 비자발적 글쓰기를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가 생각해보니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였던 것 같은데, 방학숙제로 써간 한 달 동안의 일기를 선생님이 확인하더라고요(뜨악). 빨간 펜으로 맞춤법도 지적하면서 ‘재밌었겠구나’ 따위의 코멘트를 달았던 것 같은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던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까지 글쓰기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흑흑. 사실 이렇게 얘기를 쓰다보면 적당히 양이 채워지지 않을까란 기대도 했습니다만… 못난 여의는 마음을 고쳐먹고, 제가 느끼는 낮 수업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 가자!(Ver. 소민이가 나를 집에 초대할 때)
무슨 수업을 하고 있나요?
월요일은 주말 이야기와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화요일은 만들기와 외국어 한마디, 수요일은 공작수업, 목요일은 시 쓰기 수업, 금요일은 연극수업과 댄스수업을 하기로 우리끼리 결정했는데, 임당 샘과 번갈아 수업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이슈가 터지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기 때문에 매주 같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야외에 나가 산책을 하기도 하구요. (지원 사업이 끝난 지금은 멜로디언 수업이 추가 되었어요.)
또한 낮 수업 안에서 이슈가 생기면 그것을 수업과 연동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치아에 문제가 생긴 학생과 양치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고, 건강한 치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일들을 정해보기도 합니다. 최근 우리는 매일 수업 전 양치한 사람에게 스티커를 부여하고 그 스티커를 모아 연말에 양치 왕을 선출하기로 기획하였습니다. 조금 유치한가요? 치통으로 골치를 앓고 가끔 틀니를 책상위에 올려놓아 모두를 식겁하게 만들었던 지민이 형이 양치 왕이 되기 위해 열심히 양치질을 하게 되었다면 과정은 조금 유치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흐흐
[유력한 양치 왕 후보 두 명이 양치 후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아, 얼마 전에는 한 학생의 컴퓨터 사용 및 음란물 시청과 관련하여 학생들끼리 자체 토론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주 의견은 ‘교육용 컴퓨터다’, ‘이기주의다’였는데, 당사자는 “나를 차별하는 것이냐”라며 끝까지 음란물 시청권을 고수하려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결국 긴 토론 끝에 “모두가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지”란 말을 남기며 야학 내에서는 자제하겠다고 했고, 어길 시에는 노들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어마 무시한 다짐도 하였네요. (그 이후로도 제보가 가끔 들어오긴 하지만… 형,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사실 ‘매뉴얼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현재의 낮 수업은 형식이 정해져 있는 수업은 아니에요.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글, 그림, 음악 등을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한글과 수를 아는 학생은 소수이기도 하고, 어느 방식으로도 표현 자체가 힘든 학생도 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타인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암만, 많고 말구요. 첫 번째로는 여러 가지 불편한 시선들입니다. 나들이 때 길에서 만나는 낯선 시선들은 학생들과 힘껏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고, 낮 수업반을 들여다보며 ‘매일 낮에 나와서 뭐해?’라고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일상의 부대낌 속에서 찾아낸 학생들과의 소통 방법을 부정적으로, 혹은 의아하게 보는 시선은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성인이 된 한 친구는 잘 달래지 않으면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오버 액션을 좋아해서 놀이 형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제가 찾아낸 소통 방식인데요, 저도 성인이 된 친구에게 어린아이 대하는 듯한 이 방식에 늘 불편함을 안고 갑니다.
그러나 학생을 달래는 저의 모습을 지적하거나, 학생의 태도를 이상하게 보는 것, 혹은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학생에게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냐는 눈길 등 다양한 그 시선들은 더 어렵고 불편해요. 저도 무엇이 맞는지 장담은 못하지만 저는 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맥락에 따라 받아줄 때도, 단호할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공통점은 학생이 당장에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생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냥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으로 보일수도, 규칙 적용이 어려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강압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과 내가 소통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돌발 행동의 퍼레이드이지요. 예를 들어 식단 조절이 필요한 학생이 있어 설명을 하고 수업 내에 규칙을 만들면, 꼭 한 번씩은 과자나 음료수를 가져오는 학생이 있어요. 나눠먹으려고 가져온(혹은 아니더라도) 학생 마음도 생각해야 되고, 어서 저 과자가 눈에 띄지 않도록 다시 감추기도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둘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상한다면 그날 수업은 정말 어렵습니다. 평소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묘한 긴장감을 ‘빵~’하고 터뜨려주기까지 한다면… 아, 갑자기 울고 싶어졌어요.
[수업보다 술래잡기가 하고픈 너]
마지막으로는 흔들리는 교사, 그러니까 바로 저 여의입니다. 학생 중에는 의사 표현에 소극적이거나 대답의 폭이 넓지 않은 분이 있어요. 그래서 이분의 자율적인 대답을 기다리면 진행이 힘들 때가 있지요. 원활한 진행이 뭐 그리 중요하나며 기다리자 할 수도 있지만, 일대일이 아닌 수업에서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제가 ‘보기’를 제시하면 늘 제시한 보기의 마지막 것에 긍정을 표하곤 합니다. 최대한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리다가 제시하더라도 그렇지요. 폭넓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 아닌, 그저 내 생각을 따르게 한 것 같은 그 대답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고, 더 나은 교수법(?)을 찾지 못한 것 등 여러 가지로 회의감과 죄책감이 들 때가 많아요.
또 교사로서 나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 들어 수업 자료로 쓰일 동영상을 검색하려고 보면, 19금 영상이 TV창에 도배되는 것을 볼 때 개인적으로 너무나 화가 나고 불쾌합니다. 이 감정을 숨기진 않아요. 천천히 나의 생각을 얘기하며 대화를 하지요. 사실 부탁을 드리는 쪽에 가깝긴 하지만, 무엇보다 저의 개인적인 불쾌감을 안고 느리게 기다리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1 재미있다기보다는 제일 최근 있었던 아찔한 사건이 생각나네요. 낮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시간 전에 M이 없어진 일이 있었어요. 주위 편의점과 슈퍼를 다 돌았는데 5번째로 간 슈퍼에서 ‘1시간 전에 왔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갔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누가 먹을 거준다고 따라갔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질질 짜면서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어요. 그렇게 20분을 돌아다니다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이미 구입한 카스텔라 한 상자를 들고 호떡들을 쳐다보고 있는 M을 발견했답니다. 정말 보자마자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보며 했던 M의 첫마디는 “왜영?”이였어요. 그것도 ‘M표 광대승천웃음’을 날려주면서요. 그런 M과 야학으로 돌아오면서 혼자 나가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2 혼자 수업하는 날이었는데 수업하다가 처음으로 목이 쉬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 저는 “한명씩 얘기하지 않으면 제가 목이 아파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우는 소리를 했더니, K언니가 “여의 샘 힘들어. 아무나 빨리 들어와”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셨다고 해요. 하하. 그리고 저한테는 “어, 그거는 힘들면, 어, 토요일에 혼자 울어봐바. 그럼 되지”라는 주옥같은 조언도 해주셨어요. 이 외에도 항상 본인만 안 웃긴, 진짜 웃긴 얘기들을 엄청 많이 해줘서 활력소가 되요.
#3 이 외에도 매일 “귀염둥이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유머러스한 야학 만담꾼 K. 살아있는 루피(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를 갖고 싶다는 N. 말은 정말 많지만 그만큼 주변사람 다 챙겨주느라 바쁜, 준비된 사랑꾼 P. 남다른 패션센스가 돋보이며 타인의 변화에 민감한, 커피를 좋아하며 양치를 사랑하게 된 J. 낮 수업의 노래시간을 제일 좋아하며, 스캇과 판소리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성깔 대마왕. 요즘은 하대하기에 맛이 들린 듯, 등장과 함께 ‘야’를 찾는 S(활보 중일 때도 “너, 이리 와봐”라고 하는데 너무 무서웡). 마지막으로 전화하기가 취미인 H형은 낮 수업에서 행동대장이였는데 요즘 한동안 못 봤네요. 영상통화 말고 직접 만나고 싶어요. (전화하니까 생각났는데 하루에 한 사람한테 28통이 온 적도 있어요. 하하하.)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결국 낮 수업 안에서의 ‘규칙’이란 어떻게 만들어가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가 제일 큰 딜레마인 것 같아요. 장애 특성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규칙’을 만들고 적용시킨다는 게 또 하나의 시설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요.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도 ‘규칙’이라는 단어에 낯선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낮 수업이란 공간이 장애인이란 이유로 무조건적인 배려와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특별한 케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대해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좋음이던 불편함이던, 혹은 야학 안이건 밖이건 말이에요. 이건 정말 중요한 것이고 나아가 낮 수업이란 공간, 낮 수업팀에만 국한되면 안 되는 일이겠지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계속 부대끼며… 아… 투쟁! (적절한 단어가 투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가며
컨디션과 반응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갈등이 갈등을 낳는 이 버라이어티한 낮 수업팀 안에서 여전히 고민만 남은 이 시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천천히 즐겁게 함께’ 지내고 싶어요. 주옥같은 에피소드를 다 담지 못하여 아쉽네요. 궁금하시다면 수업 참관을 권유해봅니다. 아,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아야하니 하루 전날에는 예약 필수! 다음에 봐요~
[미술관 견학 후 돌아오는 길.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주원이형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