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_2016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불편하겠지만 불편해야 할 이야기
우리는 서울시 자치구 순회투쟁을 왜 해야만 했을까?
민아영 | 노들야학의 교사이고 현재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하고 있습니다. 누워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추리소설과 로맨스소설을 읽는 것 또한 굉장히 좋아합니다. 멍 때리고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햇빛이 강하지 않은 날, 야외에서 눈 감고 드러눕는 걸 좋아합니다.
지난 2015년, 정부에서는 복지재정을 효율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옥죄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복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받지 말아야할 사람이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을 때 이를 색출해 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말로만 들으면, 누군가는 끄덕끄덕 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받지 말아야할 사람들’이란 예산을 미리 정해놓고 나서 그 범위를 넘어가버린 이들이었습니다. 사회적 구조에 의해 열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줄 세우고는 그 안에서 누가 누가 살기 팍팍한 가를 저울질하는 것이죠.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주체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있습니다. 특히 기초지자체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가 지원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와 필요한 부분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 주민들의 삶을 증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을 보면 중앙정부의 지침을 운운하며 장애인의 생존권인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는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장애인운동의 현주소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의 기본적인 이동권, 활동보조서비스, 주거권, 소득 등을 보장하지 않는 지역사회 내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것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이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대투쟁’을 선포하였습니다.
강남구를 시작으로 자치구 순회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의 예산안들을 들여다보면, 일회성 행사에도 몇 천만 원씩 사용하면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예산은 2천만 원 남짓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구민들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행사에 예산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날 치르는 관변 행사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예산을 지원하는 데에는 어찌 그리 옹색한지요.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이데올로기를 자치구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2개의 자치구에 대한 순회투쟁을 진행하다보니, 많은 공무원들을 만나고 구청장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늘 비슷했습니다. 하고 싶어도 예산이 부족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산 문제 운운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실상 우리의 요구들에 소요되는 예산은 각 자치구 전체 예산의 1%도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논의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들이 너무도 기본적이고 당연히 지원되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이에 우리의 ‘순회 투쟁’은 단순히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예산의 편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예산을 편성하는 기준 자체를 뜯어고치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다보면 수많은 욕설을 듣게 됩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우리의 외침이 과격해보이거나 뜨악스러우니 그렇게 반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은 거세된 채, 잠시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욕설로 반응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우리가 두통과도 같은 존재로 느껴졌던 것이라면, 저는 한편으로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아픔을 알고도 말하지 못하는 사회, 타인의 아픔을 경시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아픈’ 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투쟁이 그들에게 두통이 되어 “우리 사회가 많이 아프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경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자치구 순회 투쟁은 장애인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공공기관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다 보면, 좀 더 높은 곳을 향한 투쟁에서도 단단한 힘을 모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줌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냈던 그 소중한 36일. 자치구 순회 투쟁이 마무리 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필요하다면 우리는 또 언제든 우리의 이야기를 하러 갈 것입니다. 동정과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때까지, 투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