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펴면 건강 보인다, 장애인야학의 특별한 체육 수업

by nodeul posted Aug 11,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야학탐방① - 의정부 채움누리학교 ‘몸살림 운동’ 수업
"내 몸을 올바르게 아는 것, 장애인의 건강 찾는 지름길“



비마이너가 (사)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와 함께 전국의 장애인야학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의미 있는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탐방 취재합니다. 장애인야학은 초기에 주로 학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성인을 대상으로 검정고시 위주의 교육을 진행했지만, 최근 들어 장애성인 평생교육의 다양한 영역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비마이너는 총 8회 연재될 이번 기획 취재를 통해 장애인야학에서 진행되는 알찬 장애성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장애인에게 건강관리는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제이다. 실제로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장애인의 62.2%가 평소 자신의 건강상태가 ‘나쁘다’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많은 장애인이 ‘병원 신세’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 같은 조사에서 장애인들의 72.4%가 치료나 재활·기타 건강관리 목적으로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을 통한 소득 활동마저 쉽지 않은 장애인에게 병원비 부담은 언제나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평소에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자니 그조차 쉽지는 않다.

 

휠체어를 타거나 몸의 여러 부위에 마비 또는 근육 강직이 와서 몸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한 이들에겐 때론 운동조차 힘든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의 몸에 맞는 운동이 널리 보급된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장애인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강용구 씨(뇌병변·시각장애 1급)가 딱 그런 경우였다. 강 씨는 장애 때문에 몸이 뒤틀려 있어 몸이 S자 형이었다. 이 때문에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든 그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그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몸 상태를 그대로 두니 갈수록 상태는 더 악화되었고, 일상생활은 힘들어져만 갔다.

 

그런 강 씨가 몸살림 수업을 만난 것은 지난해 3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성인을 위해 만들어진 장애인야학 의정부 채움누리학교에 새로 생긴 특별 수업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체육 수업’이라고 할까? 이 수업과 만난 후로 강 씨의 몸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14053327047969.jpg

▲의정부 채움누리학교의 '몸살림 운동' 수업.



“우리의 ‘숨쉬기 운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자세를 바르게 하면 근육이 굳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평소에 근육이 굳지 않도록 하는 생활습관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는 운동도 '몸펴기 생활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앞모습은 누구나 바른 자세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뒷모습과 옆모습이에요. 구부린 채 오랜 시간 동안 자세가 굳어진 상태가 지속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건 당연하죠. 요즘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하니까 정형외과가 대박 터졌다고 하죠? 그만큼 우리 몸의 자세가 어떤지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 몸의 자세만 바르게 해도 웬만한 병은 다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 몸 자체의 능력을 키우지 않고 무조건 병원을 찾고, 의사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문화가 퍼져 있어요. 저는 그게 더 빨리 죽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낮 2시에 시작되는 채움누리학교의 ‘몸살림 운동’ 시간. 지난 7월 1일 수업은 목영섭 강사의 건강강좌로 시작됐다. 한 교실의 책상을 다 밀어내고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그곳에 모인 학생들의 장애유형은 각양각색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 목발을 짚고 온 사람, 그리고 근육 강직이 심해 말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 등등… 이들 모두 강사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있었다.

 

이 몸살림 수업은 애초 지난해 1학기에만 단기적으로 운영하고 끝내려던 수업이었다. 그래서 2학기에는 운영되지 않고 기존대로 검정고시 교육만 진행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한 학기 만에 다시 살아났다. 채움누리학교 총학생회 회의에서 이 수업을 다시 부활시켜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나온 것이다. 그만큼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던 수업이다.

 

강용구 씨는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겪은 경우다. 원래 S자 모양의 자세여서 휠체어에 똑바로 앉기도 힘들었던 그였는데, 몸살림 운동을 꾸준히 한 뒤 어느 날부터인가 휠체어에 바른 자세로 편히 앉을 수 있게 됐다.

 

자세가 좋아지자 겪게 된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5년 전 시설생활을 끝내고 체험홈을 거쳐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홀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에는 밥하는 것, 씻는 것 등 일상생활을 온전히 혼자서 해야만 한다. 그 시간에 불편한 자세로는 집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도 힘들었지만, 몸살림을 배우고 난 뒤로는 전보다 한결 나아진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수업이 강 씨에게 무슨 기적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수업은 다만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르게 알고, 이를 통해 몸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올바른 자세를 터득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이 수업에서 가르치는 이른바 ‘몸펴기 생활운동’은 ‘바른 자세를 통한 건강’이라는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배가 아프면 아픈 배를 살살 쓸어 주었다. 배를 위쪽으로 또는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쓸어 주면 아프던 배의 통증이 사라졌다. 체해서 아파하는 아이들에게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등을 두드려 주면 “거억!” 하는 트림 소리와 함께 체증이 풀렸다. 어깨 아플 때에는 어깨를 때려 주었고, 허리 아플 때에는 허리를, 다리 아플 때에는 다리를, 무릎 아플 때에는 무릎을 때려 주었다. 바로 아픈 지점을 때려 주었다. 아픈 곳을 때리면 더 아플 것 같지만, 경험을 통해서 보면 점차 아픈 것이 풀렸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

- “몸펴기 생활운동의 기원”, (www.mompg.or.kr)

 


그래서 이 운동을 하는데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 장애인이라도 쉽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게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날 수업에서 모든 참여자가 함께한 첫 번째 실습 과제는 바로 ‘호흡하기’였다. 목영섭 강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과정에서 모든 장기가 올바른 위치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라면서 “유산소 운동이 적은 장애인일수록 매일매일 호흡을 잘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14053327014576.jpg

▲채움누리학교의 몸살림 수업은 장애인 각자에게 맞는 운동법으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호흡운동이 끝난 뒤, 직접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몇 명이 바닥에 내려와 기어가기 시작한다. 서로의 호흡을 챙겨주고 속도를 맞춰가며 기어가기를 십여 분간 계속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게 무슨 운동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단순한 기어가기일 뿐이지만, 이 자세 또한 목영섭 강사가 직접 장애인 학생들의 장애 특성에 맞춰 지도하는 운동법이다.

 

목 강사는 “평소에 운동할 기회가 별로 없어 체력을 기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다 보니, 각자의 특성에 맞는 운동법을 지도하고 자기 몸을 꾸준히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라면서 “특히 학생분들은 유산소 운동이 부족하다고 느껴 수업시간에는 조금이라도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몸을 흔들고 꼬는 등 많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더 많은 이들과 땀 흘리며 함께할 기회가 생겼으면…

 

이 수업을 초기 수업부터 지켜봐 온 채움누리학교 이민선 교장은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앞으로도 꾸준히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씨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이 강직된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한 운동을 생활화하면서 실제로 자신 일상생활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직 이 수업에 모든 장애학생이 다 함께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채움누리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18명인데, 이들이 다 함께 교실에 모여 운동을 하기에는 교실 공간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막상 몸살림 수업을 들으러 왔다가도 좁은 교실에 밀려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좀처럼 몸살림 수업에 발길을 주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 학교에 다니는 3명의 발달장애 학생들도 몸살림 수업에는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장은 “몸살림 수업을 통해 익힌 운동법과 건강관리가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학교 전체에 좋은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학교 시설이 잘 뒷받침되지 않아 모든 학생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라고 밝혔다.

 

이 수업에 꾸준히 참여해 온 용옥선 씨(지체장애 1급)는 “사람들과 함께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격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몸살림 수업이 주는 최고의 강점”이라며 “운동 기회가 적은 장애인들에게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Articles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