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엘리베이터 오셨네
박경석 | 노들장애인야학 고장인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로 출세하여 활동하고 있음. 일을 즐거움으로 알고 놀듯이 일하며 머리도 길고 수염도 길었음.
2015년 12월 17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성탄절 선물 같은 ‘기쁘다 엘리베이터 오셨네’ 행사가 열렸다. 복잡한 구조와 많은 유동 인구를 자랑하는 그곳에 드디어 장애인도 4호선에서 5호선으로 바로 환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그곳을 통과하려면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했고, 그래서 적어도 2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또한 잦은 고장과 추락 사고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었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해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하철과 버스, 서울시청, 국가인권위원회, 이순신 동상 등 점거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점거하면서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한 물리적 투쟁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이동권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을 했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그러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가장 많이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이 서명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것은 4호선과 5호선 환승 구간에 유동 인구가 많았고, 또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간사 단체였던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접근하기에 편리한 역이었기 때문이다. 또 노들야학에는 강동 쪽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늘 원성이 자자했던 곳이기도 하다.
2001년에 그곳에서 서명운동을 하면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서명도 잘 되었고 모금도 만만치 않게 되어서, 투쟁기금을 많이 확보하는 즐거움이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에 함께 해주십시오. 서명해주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꼬마 아이가 다가 와서 “아저씨 이름이 이동권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날 나는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비장애인들에게는 이동권이 권리로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들이마시듯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권리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느낄 수 없었던 권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또 과연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게도 느껴졌다. 선거제도가 생겨날 남자에게는 당연히 투표권이 있고,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가부장제의 사슬이 더욱 악랄했던 시절, 감히 여성이 선거를 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혹시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도 그러한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지하철에 리프트만 설치해줘도 감지덕지할 것이지, 어찌 감히 장애인이 이동권을 이야기하면서 엘리베이터를 다시 만들라고 생떼를 쓰고, 더 나아가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인가. 말은 좋고, 내가 니 마음 이해는 하는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쓸데없이 예산을 왜 낭비하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시원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없었다. 이동권은 권리가 아니었고 단어조차 없었다.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2002년에 헌법 소원을 제기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그것이 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권리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이동권’이라는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신어자료집에 2003년에 처음 등록된다. 2005년에 우리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하면서 제3조에 이동권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이 모든 권리와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그리고 특별교통수단의 운행은 법이나 성경이나 불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주먹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주먹이 바로 투쟁이었다.
그리고 15년이 자나서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법이 만들어지고,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수많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지만, 그곳과 더불어 24개 역사에는 도저히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서울시는 버텼다. 그러나 결국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역사에 대해서도 앞으로 5년 이내 모두 엘리베티어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밤 11시가 다 되어도 장애인콜택시는 오지 않고 날씨는 춥고 해서, 지하철 혜화역(4호선)에서 답십리역(5호선)으로 이동을 해 집으로 가려 마음먹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알아보았다. 24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왔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추운 겨울밤 지하철을 탔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탈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30초 만에 환승에 성공하고 거짓말같이 24분 만에 답십리역에 도착했다. 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밤에 지하철과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가보는 게 나의 꿈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저상버스만 타고 집까지 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아직 대학로에서 집까지 가는 저상버스는 없다. 저상버스가 100% 도입 되면 그 꿈 또한 이루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