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립전자 비리 사태를 보며
정립전자 원장이었던 김현국 씨는 일하는 직원의 손을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나해니 | 사회적 기업 노란들판 경영지원팀장. 인쇄 견적, 지원사업 신청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맥주와 여행을 삶의 활력소로 여긴다. 춤 배우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늦은 밤 오손도손 술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 나만의 작은 방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정립전자 비리 사태
“지난 2005년 3차 농성 이후 10년 만에 다시 정립회관에서 대규모 비리 사건이 터졌다. 회관이 운영하는 정립전자 김현국 대표(44, 원장)와 박 모(49) 판매본부장 등 2명이 348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고 또 다른 정립전자 간부 신 모(56) 씨 등 12명이 불구속 기소된 것이다.”(「뉴스타파」 ‘무한반복 복지시설 비리… 해법은 없나?’ 2006. 1. 24 기사 중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작년 11월부터 관할 당국인 광진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3차례에 걸친 면담을 통해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정립전자의 비리 및 횡령 사태를 회피한 이사진의 전원 해임과 시설의 민주적인 운영을 요구하였다. 서울시는 특별감사를 통해 보조금 횡령 등을 추가 확인하고 ‘시보조금 중단, 보조금 환수, 낙하산 시설장 교체(공개 채용 선출)’ 등의 행정명령을 광진구청에 내렸다. 그러나 광진구청은 보조금 환수 외에는 행정명령을 직접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의 공문을 서울시에 발송하였다.
이런 광진구청의 행태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비민주적 운영과 348억이라는 초유의 횡령 사태를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보다도 최일선에서 관리와 감독을 수행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광진구청이 오히려 본연의 임무를 회피하기에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2016년 2월 19일 오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정립회관민주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정립공대위)는 광진구청 앞에서 ‘(복)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정립전자 비리 및 횡령 사태, 광진구청의 안일한 관리감독 및 책임 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정립전자가 2013년에 서울시 선정 우수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만 해도 누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겠는가. 당시 노란들판도 함께 선정이 되어 우수 사회적 기업 간담회와 공동영업단 활동 등을 통해 정립전자의 소식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정립전자 직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원장을 비롯한 핵심 운영진들에 의해 대규모 비리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완수 이사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고 있다.
나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6개월 동안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 정립보호작업시설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대략 알고 있다. 해마다 정립회관을 비롯한 산하기관들은 몇 날 며칠을 고생하여 이사회에 제출할 결산 및 사업보고, 예산 및 사업계획 자료를 준비했다. 이사진에서 자료를 받아보고 평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사장은 정립전자의 운영 상황을 몰랐다며 빤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영화 「순응자」와 한국소아마비협회
지난 주말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순응자」를 아리랑씨네센터에서 보았다. 영화의 배경은 무솔리니 정권하의 이탈리아다. 주인공 마르첼로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파시스트가 되어 정권의 비밀경찰에 자원한다. 그는 첫 임무로 자신의 스승이자 프랑스에서 정치적 망명 중인 반독재 인사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후기 파시즘 운동의 주도자는 베니토 무솔리니이며, 이 후기 파시즘에서는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신체가 우월하고, 징병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 또한 이들의 정치적 직접 행동에 있어서 남성적 카리스마를 요구 또는 분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파시즘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진보주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우선시되는 자유주의의 반대가 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키백과 ‘파시즘’ 항목에서 발췌)
어떻게 보면 직장도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산하의 기관에서 몇 년간 근무할 당시 나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것은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불공평하고 합법적이지 못한 어떤 일들이 만연해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고 양심이었다. 되돌아보면 영화 「파시즘」을 떠올리게 할 만큼 두렵기도 했다. 내가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합원으로서 정립공대위 활동을 했던 그 즈음, 정립공대위 활동을 하는 조합원들, 노들야학 학생과 교사들, 장애인 이용자들은 한국소아마비협회로부터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이사장 퇴진을 주장하는 피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이사장의 지시를 받은 시설장은 나에게 징계를 내렸다. 또한 이사장이 다니는 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했다. 정립공대위 동지들과 있던 나의 사진을 사람을 시켜 몰래 사진을 찍게 해 고소한 것이다. 그리고 이사장은 며칠 후 시설장과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때 내게 명패를 던지는 시늉을 하며 위협했고 막말을 쏟아냈다. 그 추잡하고 성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당시 이사장실에 있던 소파를 가리키며 “내가 누우라고 하면 넌 여기에 누워야 돼!”라는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인간이 아직도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장으로 있다. 최근의 이사진 명단에는 그가 다니는 보문교회 소속의 인사들도 몇 명 있다. 나는 정립전자 비리 사태에 대해 발뺌하고 있는 그와 이사진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손을 제대로 본다는 것
정립전자는 LED 조명, CCTV, USB 저장장치를 주로 생산했다. 원장이었던 김현국 씨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손을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성실하게 일하며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일상을 그를 비롯한 운영진들은 처참하게 빼앗은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일터는 삶을,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생활의 일부이다. 그런 곳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2005년 당시에도 그랬다. 출근 피케팅을 하는 내게 “너는 정립회관 소속도 아니면서, 상관도 없는 게 왜 피케팅을 하냐!”라고 마구 따지며 구사대 역할을 자처했고, 단기간에 팀원에서 팀장으로, 임원으로, 정립전자 원장으로 고속 승진을 했다. 이번 비리 사태를 보며 인간은 그 사고와 행태가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안으로
정립전자에 ‘순응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모한 싸움을 겁내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는 이들이 있었기에 비리 사태는 밖으로 드러나고 밝혀질 수 있었다. 이제는 밖에서 안으로 힘을 보내야 한다. 최근 정립공대위 회의에 한 번밖에 참석하지 못해 몹시 부끄럽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노라 다짐해 본다.
25년간 한국소아마비협회에서는 4차례(1990년, 1993년, 2004~2005년, 2015년)에 걸쳐 비민주적 운영과 비리 사태가 발생하였다. 버겁고 힘이 들더라도 우리가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이러한 악순환을 단절시킬 수 있는 변화가 분명히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정립전자 비리 및 횡령 사건의 발생 원인과 그 문제의 발단이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밝힐 것을,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검찰이 객관적이고 엄중한 수사를 할 것을, 또 광진구청과 서울시가 행정당국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박경석 교장 샘이 최근에 하신 말씀처럼,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