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은 삶의 동반자
박은영 | 활동보조인 일을 시작한지 이제 만 1년이 되어가는 초심자 활동보조인. 산행을 좋아하고 가끔씩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일을 즐긴다.
나는 1남 3녀를 둔 가장으로, 지방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가 자녀들 교육 문제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와서도 지방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운영이 어려워졌고, 둘째와 셋째가 대학생이 되자 집안 재정은 더욱 압박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돌파구를 찾다가, 2015년 1월에 요양보호사 학원에 등록하여 실습 과정까지 마치고 시험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의 권유로 다시 노들 활동보조인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4월 초부터 이용자 두 사람과 실습을 하고 나서, 4월 말부터 지금의 이용자와 본격적으로 활동보조인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번 역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하차하실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을 들으면, 그저 ‘아, 보폭을 좀 크게 해야지’라고만 생각을 하던 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동휠체어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서 이용자와 함께 뒤로 내리는 것이 익숙하게 되었다. 또 지하철 역사를 다닐 때 계단이 있으면 계단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면 에스컬레이터로 별 생각 없이 이동했는데, 이제는 승강기의 위치가 역마다 어느 쪽에 있는지 찾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장애인의 일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50년 넘게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장애인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시작하면서도, 사람 사는 일인데 부딪쳐보면 별 어려움 없이 얼추 해내겠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장애인과 함께 다니다보니 전에는 겪지 못한 돌발적인 위험 상황이 종종 발생해 늘 긴장이 되었고, 일하는 요령도 부족해서 처음에는 피로감이 누적되어 갔다. 이용자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시작해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어서, 우리는 같은 초심자의 처지에서 서로 웃고 고민하며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지난해를 보냈다. 특히 작년 4분기 때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축소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집회 현장도 함께 다니면서 정말이지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학창 시절에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고 보면 노동자에겐 노동자의 몫을, 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의 몫을 돌려줘야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일 텐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이 사회가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풍토와 제도가 정착되길 바라본다. 또 이기적이고 똑똑한 척 하지만 실상은 불행하게 사는 사람보다, 행복한 바보가 더 많아지는 세상을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되면 우리 활동보조인의 생활도 더 보람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금 엉뚱한 것도 같지만, 문득 이솝 우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노새 두 마리가 소금을 지고 가다가 그 중 한 마리가 물에 빠졌고, 그러자 소금이 물에 녹아 짐이 가벼워졌다. 그 노새는 솜을 지고 갈 때도 짐을 가볍게 할 요량으로 물에 일부러 빠졌는데, 오히려 물 먹은 솜 때문에 짐이 무거워져 갖은 고생을 하게 된다. 나는 활동보조 일을 하는 동안, 그냥 다른 한 마리의 노새처럼 소금이 주어지면 소금을 솜이 주어지면 솜을 성실히 지고 가고 싶다. 내 편함과 이익을 위해 요령을 피우지 않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은 서로 남남의 존재로 만나게 되지만, 서로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