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게 아니다”
- 영추문 현수막 행동 그리고 연행
양혜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 양진입니다. 어쩌다 장판에 들어와 아직가지도 어쩌다 일하고 있습니다.
한자협 활동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변 동지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 물어본 질문이 있다. “혹시 나 투쟁력 없는 활동가인 거 다 소문 났어?”
‘상설적 투쟁체’에서 일하며 투쟁력이 없는 활동가라니.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활동가인지 의심할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투쟁의 ‘꽃’이라 해도 무방한 ‘비택 (일명 ‘비밀 택틱’, 일반적으로 비밀리에 진행되는 급습 시위를 의미한다)’에 단 한 번도 내가 초대된 적이 없었다. 아니, 비택 한 번도 안 해봤고 솔직히 자신 없는 것도 맞기는 한데... 그래도 나 한 번 끼워주지! 나서서 물어봤으면 한 번이 무엇이오, 전장연 사무처에서 나를 두 번도 세 번도 끼워주었을테지만, 왠지 무섭고 자신이 없는 것도 맞았기에 신포도 취급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지만 내가 투쟁의 현장에서 여전히 별다르게 ‘강성’의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는 여전히 기가 죽기도 하며, 그렇게 평범한 활동가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여기서 이따 영추문에 올라갈 사람?”이라는 박경석의 질문에 나는 신이 나서 “저요, 저요!” 라 외쳤다. 그날은 내가 국기위 앞 선전전에 참여한 날이었다. 내란 정부 윤석열 대통령이 광장의 목소리를 통해 탄핵당하고, 이재명 정부가 새로이 들어선 지 얼마되지 않을 때였다. 경복궁 인근 위치한 ‘국정기획위원회 (국기위)’1) 사무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시민단체가 등장해 자신들의 의제를 외쳤다. 전장연 또한 빠질 수 있으랴, 매일 혜화역에서 진행하던 ‘지하철 선전전’ 행동을 국기위 앞에서 진행했다. 국정기획위원회에 외치고 싶은, 또 외칠 수 있는 의제는 언제나 그렇듯 전장연에 한가득 넘쳐나지만, 그때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국정과제에 앉힐 것을 대대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2)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권리중심’이라는 ‘정치적’인 색채를 지닌 용어를 일자리 사업의 이름으로 앉힐 수는 없다며, 권중일자리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있던 중이었다.
1) 탄핵을 통해 새 정부가 꾸려지면서 별다른 ‘인수위 (대통령인수직위원회,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의 원활한 인수를 위한 업무를 위해 구성하는 위원회이다)’가 열리지 않고 ‘국기위 (국정기획위원회)’가 열렸다. 기존 인수위가 가졌던 권한 중 ‘인사 검증’을 제외하고 정부 조직 개편, 국정 과제 정리 등을 하는 위원회이다.
2) 지방 사업으로만 이행되고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권중일자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처럼 시장의 한마디에 언제든 사라질 수 있었기에, 이를 중앙 정부에서 책임지라고 요구하기 위한 적기였다.
이러나저러나. 난 내가 드디어 ‘비택’을 한다는 것에 신이 났다. 나중에 들은 뒷 이야기로는, 한 활동가는 이 ‘영추문 비택’을 거절했다고 한다. 행동에 비해 나오는 성과가 수지 타산이 안 맞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다. 그렇게 ‘투쟁벌레’ 박경석께서 영추문에 오를 다른 활동가를 찾아 나서다 당일 선전전에 나선 내가 걸려든 것이다. 투쟁꾼 결핍이 있었던 나에겐 수지타산이 맞았다. 야호!

2025년 7월 25일. 국정기획위원회 인근 경복궁 영추문에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확대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졌다.
영추문에 오를 때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처음엔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찰이 발견했는지 안 했는지 불안해하기 바빴지만, 막상 계단을 올라 담을 넘어 영추문 꼭대기에 들어가야 하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평소 생활 체력(지구력)은 그나마 평균치에 가닿는 편이지만 근력이 꽝이다. 가진 게 지방뿐 근육도 없는 내가 정다운의 등을 밟고 순간의 힘을 내어 담을 올랐던 것은 아무래도 비택이 가져다주는 도파민과 책임감이었던 것 같다. 현수막을 영추문 밖으로 던지는 것 또한 근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지구력이 필요한 일을 하겠다...’) 생각보다 더 무거운 현수막과 생각보다 더 멀고 높은 성벽에 나와 예인, 용수는 약 서너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현수막을 내렸다. 덕분에 모든 상황이 끝나고 영추문 아래로 내려왔을 때는 팔과 다리에 힘이 다 빠져 후들거렸다.
경찰에 의해 현장 체포되고 종로서에 가서 경찰조사를 받고 성북서로 옮겨져 입감되었을 때도 뭔가... 뭔가 웃겼다. 이게 진짜인가? 말이 엄격한 경찰조사이지, 대기 시간이 8할이었다. 나는 용수와 예인에게 ‘지하철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게 종로서 지하에서 1호선 지하철역을 줄줄이 읊었다. 1호선에 4호선, 3호선까지 하고 나자 더 할 게 없던 나와 예인은 지쳐서 그냥 조사실 안과 밖에 걸쳐 둘이 누워있었다. 한 형사가 그를 보고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수갑을 차고 나니 웃음이 입 밖으로 삐져나와 멈추질 않았다. 엉성하게 채운 수갑은 그대로 손목을 빼어 핸드폰을 만질 수도 있었다. 텔레그램을 보니 역시 동지들이 잡혀들어간 우리 때문에 고생 중이었다. 에고, 잡히지 말걸. 미안했다.

나중에 이규식의 말을 들어보니 성북경찰서 유치장은 ‘호텔’이라고 했다. 딱 그 정도로 예상보다 좋은 시설이었고, 그럼에도 딱 그만큼 사람을 가둬놓는 곳이었다. 평소에 꽤나 깔끔을 떨고 약간의 공황장애가 있는 나는 머리카락으로 가득한 바닥과 담요, 결코 내 자유로 나갈 수 없는 투명한 벽을 바라보며 그제야, 약간 움츠러들었다. 옆에서 예인이 목욕투쟁을 해서 나와 예인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샤워장은 상상 이상으로 더러웠으며 악취가 났다. 내가 갇힌 방의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적당히 담요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그곳에 누워서 ‘이 담요 위를 결코 벗어나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유치장 안에서 별다르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내 몸길이만큼의 담요에만 누워있었다. 몸이 의지하는 공간만큼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 담요의 크기만큼만, 마신 물 만큼만 그곳에 있었다.
새벽에는 웬 시끄러운 아저씨가 입감되었고, 그 아저씨는 쉴새없이 쌍욕을 하며 감독경찰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나는 아침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계속 잠만 자는데, 면회자가 가져다준 옷이라며 가방 하나가 나에게 왔다. 반쯤 잠에 취해 있었어서 면회자가 왔는데 왜 면회는 안 하고 짐만 덜렁 오는지, 생각할 새도 물어볼 새도 없었다. 가방에는 귀여운 글자로 ‘beautiful school’이라고 적혀있었고, 내 브라와 티셔츠가 야무지게 들어가 있었다. 내가 평소 쓰는 로션도 있었다. 물건을 이것저것 꺼내니 그 안에는 자그마한 포스트잇이 접혀있었다. 엇, 유진이가 왔구나? 유진은 당시 내가 잠시 함께 살고 있던 친구였다. 우와, 이것이 바로 옥중 편지? 포스트잇을 펼쳐보니 유진이의 짧은 편지가 적혀있었다. "면회가 안된다니 이게 무슨 일이니, 걱정된다. 그래도 별일 없을거야, 얼른 나와서 얼굴 보자. 보고싶어."
뒤이어 또 면회자는 없고 면회자가 가져다준 물건이 더 왔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라는 책이었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지... 아! 노들야학 책모임 책이구나! 나는 유치장에서 재미없는 만화책을 옆으로 하고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
온갖 옷가지에 토너와 로션, 책 사이에서 난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다. 당장 나가든 오늘 밤에 나가든 내일 나가든, 혹여나 변호사님이 말한 대로 재수 없이 ‘낮은 가능성’에 걸려서 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에 가더라도, 나는 이곳에서 적응해야 한다. 이 물건들을 받고도 그 좁은 담요에만 누워있을 수는 없다.
나는 옷을 갈아입을테니 CCTV를 잠깐 끄거나 가림막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칫솔과 비누도 달라고 했다. 이도 닦고 얼굴도 닦았다. 양 콧구멍에 휴지를 쑤셔 넣고 또 달라고 해서 얻은 KF94 마스크를 써 후각을 완전히 차단한 뒤 화장실도 다녀왔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눈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더 치웠다. 그러고 나니 그곳은 내가 담요 크기보다는 더 의지할 수 있는, 조금 넓은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이 토너와 로션을 이예인과 배용수에게도 전달해달라고 경찰에게 말했다. 옆에서 예인은 비건 투쟁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혼자가 둘이지 그러면 외로운 것이 아니다
- 박준, 〈가을의 말〉 中

구치소로 끌려가는 재수없음은 다행히 없었고, 나와 예인, 용수는 그날 오후 4시 즈음 바로 풀려났다. 엉엉 울어서 얼굴이 다 눈물로 젖은 엄마가 있었고, 지난 5월 혜화동 성당에서 고생한 초현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주말이었음에도 동지들이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상설적 투쟁체’ 전장연답게 노래를 켜고 마이크를 켜고 성북경찰서 앞에서 난리를 피웠다. 더러운 손으로 두부도 나눠 먹었다. 나는 엄마와 추어탕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누워 자고 혼자 청소하고 혼자 밥을 차려 먹던 집이었음에도, 나는 누구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투쟁력’은 나에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