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겨울 144호 - [2025년 평밥&노꿈]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쇼 머스트 고 온 - 평등한 밥상 후기 / 황시연

by 루17 posted Oct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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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평등한 밥상 & 노란들판의 꿈]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쇼 머스트 고 온

 - 평등한 밥상 후기

 

 

 

 황시연

2년을 꽉 채운 노들야학 교사입니다. 네 번의 평등한 밥상을 돌아보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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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평등한 밥상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을 꼽으면 “비 언제까지 오는 거야?”가 맨 꼭대기에 있지 않을까. 부스를 펼 때까지만 해도 오후에는 날이 개지 않을까 희망을 붙들고 있었는데, 누군가 하루 종일 부슬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아이고. 처음 한두 시간은 우산을 쓰고 다니던 사람들도 하나둘 쾌적함을 포기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 역시 비닐우산 하나를 굳이 굳이 쓰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팽개쳤다. 

 

  희비가 엇갈린 메뉴들도 생각난다. 9월이면 아직 여름이니까 잘 먹겠지, 하고 비싼 블루베리까지 넣어 준비했지만 척척한 날씨에 뒤통수를 맞은 화채. 그 뒤에 앉아서 제발 화채 좀 먹어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사람들. 뜻밖에 전이 불티나게 팔려 쉴 새 없이 전을 부치던 연대부스 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추위, 오한, 실소……. 세 시쯤엔가, 옆 부스에 가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아…… 막걸리가 너무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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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내내 비가 주룩주룩, 그럼에도 마다않고 찾아주신 분들로 준비된 메뉴는 모두 동났어요

 

 

  그래도 쇼는 계속된다고, 궂은 날씨에도 찾아준 사람들 덕에 복작복작했다. 손님들이 마로니에 공원 가장자리와 유리빌딩 주차장에 비를 피해 둘러앉아 있던 광경이 뭐랄까, 웃겼다. 지금껏 공원을 점거하다시피 하는 평등한 밥상만 보다가 주차장에 옹기종기 모인 것을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마땅한 조명이 마련되지 않아 우중충한 광경이 우습기도 하고. 와글와글한 주차장을 보다가 문득 이거 옛날 야학 사진에서 봤던 풍경이구나! 하고 깨달은 순간도 있었다.

 

  변함없는 것들도 있었다. 기회가 생기자마자 노래 곡조를 뽑아내는 장기 형, 교사들이 혼이 빠져 있든 말든 둘러앉아 끼리끼리 술을 마시는 학생들. 몇 년째 평등한 밥상을 찾아주는 친구들도 반갑고 고마웠다. 여름방학 무렵에 평등한 밥상 티켓이 나오면 언제나 긴장 반, 기대 반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와서 얼굴 보고 가라고 할 생각을 하면 신나기도 하고, 초대가 부담이 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밥값이 싸진 않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님에도 연락을 받으면 흔쾌히 “올 것이 왔구나” 하고 티켓을 사 주는 친구들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있다. 

 

  공원의 부스나 무대 쪽 구경을 자주 나가볼걸, 뒤늦게 아쉬움이 든다. 손님으로 온 친구들이 다른 시민단체 부스에서 패브릭 달력을 받아 와서 재밌는 활동이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는데 부스 붙박이 신세라 마음 편히 나가 있기 어려웠다. 종로구 노래자랑이나 노란들판의 꿈에서 진행한 공연도 보지 못해 아쉽다. 나중에 들으니 비가 내리는 바람에 관객석도 한산했다고 해서 내가 다 속상했다. 부스 일꾼은 언제 공연을 볼 수 있을까?

 

  밤에는 결국 이성을 놓았다. 오늘 안에 팔아야 하는 술과 음료를 수레에 싣고 다니며 뻔뻔하게 테이블마다 찾아가 방문 판매도 하고, 케이팝 DJ의 공연이 한창일 때는 공원에서 노래에 맞춰 헤드뱅잉과 고성방가도 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다. 술이 깨고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머리를 흔들지 않을까 싶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제정신으로 할 순 없다.

 

  이번 평등한 밥상에서는 ‘우리’에 특별한 구성원이 한 명 더 있었다. 샨티학교에서 인턴십으로 야학에 온 김시연 학생이 처음으로 함께한 평등한 밥상이었다. 웃긴 이유지만, 이름이 똑같아서 인턴십을 하는 동안 마음이 많이 갔다. 그래서 음료수 부스 맞은편 방송통신대 건물 처마 밑에서 “어쩌지…” 하고 망설이고 있던 시연 님이 눈에 확 들어왔나보다. 막 아는 척을 해서 시연 님을 부르고, 부스에 데려가서 “여기 저희 인턴 학생인데 밥 주세요!!” 했던 순간은 그날 있었던 일 중 가장 뿌듯한 일이다. 급식비를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학생이 평등한 밥상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10월에 뉴스레터 글을 쓰면서 평등한 밥상에 참여한 소감을 나눈 것도 좋았다. 나는 이 행사를 ‘대항로 노동력 총집중대회’, 또는 ‘큰 거 온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연 님이 “사랑을 받는 행사”라고 해준 것이 너무 신기했는데, 돌이켜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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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를 쓰며 네 번의 ‘평밥’을 돌아봤다. 2022년에는 손님으로 왔다가 엉덩이 붙일 곳을 찾지 못해 마라 떡꼬치만 하나 사 먹고 집에 갔다. 그러다 얼렁뚱땅 교사활동을 시작하며 2023년부터는 일손을 보탰다. 사실 2023년에는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서 당시의 텔레그램 방을 보고 왔다. 내가 두부를 아주 신중하게 썰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보다 다른 사진 속 반가운 얼굴들, 떠나간 얼굴들, 조금씩 변한 얼굴들이 더 눈에 띄더라. 2024년부터는 풀타임으로 일해서 기억이 비교적 생생하다. 하루 종일 올리브 토마토 샐러드를 팔고, 뒷정리를 하다가 철망에 손가락이 껴서 한동안 손가락에 멍을 달고 다녔다. 그리고 2025년, 얼음기둥이 담긴 아이스박스에 계속 음료를 쏟아 넣으며 손님들을 맞이했던 음료 부스 일까지.

 

  어느새 평밥이 우리 행사고, 내 일이 되어버린 걸까.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바쁘게 돌아다녔는데도 재미와 애정을 느끼다니.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역시 궁금하다. 내년에는 또 얼마나 힘들고 웃긴 평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밥은 챙겨 먹는 노들야학, 우리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또 만납시다. 설마 눈이 오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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