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평등한 밥상 & 노란들판의 꿈]
‘내면의 초상화’
김필순
노들야학 10년 차 자원활동교사


내면의 초상화 부스. 성숙, 규형, 장기 작가님
오랜만에 ‘노란들판의 꿈(이하 노꿈)’ 날에 비가 내렸습니다. 다행히 기온이 낮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부스를 찾는 사람이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더군요. 박규형, 박성숙, 김장기 세 분의 작가님과 함께 부스 운영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내면의 초상화’가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제가 먼저 의뢰를 해보았지요.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아뿔싸,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말이죠. ^^
부스에 방문하면 먼저 어느 작가님에게 작업을 의뢰할지 정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고민하며 작가를 선택하는 분부터, 이미 작가님을 알고 찾아오신 분들까지 방문객들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어떤 분은 특정 작가님의 작품을 꼭 소장하고 싶어 멀리서 오셨다는데, 그 인기에 새삼 놀라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부스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부스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놈의 인기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한 방문객이 완성된 그림을 보고 본인과 너무 안 닮았다며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하셨거든요. 저라면 작가로서 무척 당황했을 텐데, 우리 작가님은 흔쾌히 “네~” 하고는 다시 펜을 잡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다시 그린 그림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ㅎㅎ 아마 그 사각턱의 초상화는 ‘정정’이 불가능한 모델 본연의 매력이었나 봅니다.
세 작가님의 작품을 모두 갖고 싶다며 동시 의뢰를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델은 한 명인데 완성된 세 점의 그림은 서로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또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의뢰하신 분은 무척 만족해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제 기분도 참 좋았습니다.

세 작가님이 모두 각자의 배용수 님을 그렸습니다
최대 난관은 세 분이 함께 와서 ‘단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한 명씩만 그려온 터라 어쩌나 싶었죠. 각자 그려서 나란히 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려던 찰나, 규형 작가님이 “제가 그려보겠습니다”라고 나서는 게 아니겠어요? 귓속말로 “정말 가능해?”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죠! 알고 보니 그분들은 장애인개발원 직원분들이셨는데, 사무실에 딱 붙여놓겠다며 환하게 웃으시는데 정말 뿌듯했습니다.

단체 초상화, 그 어려운 작업을 규형 작가님이 해냈습니다
비 내리는 오후,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내면의 초상화’ 부스에는 2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길을 보며 30년을 이어온 노들야학의 시간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습니다. 노들 학생들을 이미 알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며,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에 참 잘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님들





저는 2016년 ‘불수레반’ 수학 수업으로 노들야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상근활동과 자원활동교사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노들야학 수업은 제게 늘 ‘박카스’ 같은 활력소였습니다. 그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늘 시간에 쫓기듯 학생들을 만났던 게 아쉬웠는데, 갭이어(Gap Year)를 보내는 2025년은 덕분에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노꿈’ 부스 지킴이 활동도 그중 하나였고요. 후원주점이 아닌 부스라니 웬 횡재인가 싶어 덜컥 손을 들었던 ‘내면의 초상화’. 비가 오는 내내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