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겨울 144호 - [2025년 평밥&노꿈] ‘내면의 초상화’ / 김필순

by 루17 posted Oct 16,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5년 평등한 밥상 & 노란들판의 꿈]

‘내면의 초상화’

 

 

 

 김필순

노들야학 10년 차 자원활동교사

 

 

 

 

김필순1.jpg

 

김필순2.jpg

내면의 초상화 부스. 성숙, 규형, 장기 작가님

 

 

  오랜만에 ‘노란들판의 꿈(이하 노꿈)’ 날에 비가 내렸습니다. 다행히 기온이 낮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부스를 찾는 사람이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더군요. 박규형, 박성숙, 김장기 세 분의 작가님과 함께 부스 운영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내면의 초상화’가 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제가 먼저 의뢰를 해보았지요.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아뿔싸,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말이죠. ^^

 

  부스에 방문하면 먼저 어느 작가님에게 작업을 의뢰할지 정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고민하며 작가를 선택하는 분부터, 이미 작가님을 알고 찾아오신 분들까지 방문객들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어떤 분은 특정 작가님의 작품을 꼭 소장하고 싶어 멀리서 오셨다는데, 그 인기에 새삼 놀라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부스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필순3.jpg

비가 오는 와중에도 부스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놈의 인기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한 방문객이 완성된 그림을 보고 본인과 너무 안 닮았다며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하셨거든요. 저라면 작가로서 무척 당황했을 텐데, 우리 작가님은 흔쾌히 “네~” 하고는 다시 펜을 잡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뿔싸, 다시 그린 그림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ㅎㅎ 아마 그 사각턱의 초상화는 ‘정정’이 불가능한 모델 본연의 매력이었나 봅니다.

 

  세 작가님의 작품을 모두 갖고 싶다며 동시 의뢰를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델은 한 명인데 완성된 세 점의 그림은 서로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또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의뢰하신 분은 무척 만족해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제 기분도 참 좋았습니다.

 

김필순4.jpg

세 작가님이 모두 각자의 배용수 님을 그렸습니다

 

 

  최대 난관은 세 분이 함께 와서 ‘단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한 명씩만 그려온 터라 어쩌나 싶었죠. 각자 그려서 나란히 놓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려던 찰나, 규형 작가님이 “제가 그려보겠습니다”라고 나서는 게 아니겠어요? 귓속말로 “정말 가능해?”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죠! 알고 보니 그분들은 장애인개발원 직원분들이셨는데, 사무실에 딱 붙여놓겠다며 환하게 웃으시는데 정말 뿌듯했습니다.

 

김필순5.jpg

단체 초상화, 그 어려운 작업을 규형 작가님이 해냈습니다

 

 

  비 내리는 오후,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내면의 초상화’ 부스에는 2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길을 보며 30년을 이어온 노들야학의 시간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습니다. 노들 학생들을 이미 알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며,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에 참 잘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김필순6.jpg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님들

 

 

김필순7.jpg

 

김필순8.jpg

 

김필순9.jpg

 

김필순10.jpg

 

김필순11.jpg

 

 

  저는 2016년 ‘불수레반’ 수학 수업으로 노들야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상근활동과 자원활동교사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노들야학 수업은 제게 늘 ‘박카스’ 같은 활력소였습니다. 그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늘 시간에 쫓기듯 학생들을 만났던 게 아쉬웠는데, 갭이어(Gap Year)를 보내는 2025년은 덕분에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노꿈’ 부스 지킴이 활동도 그중 하나였고요. 후원주점이 아닌 부스라니 웬 횡재인가 싶어 덜컥 손을 들었던 ‘내면의 초상화’. 비가 오는 내내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