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노들아 안녕] 함께, 다르게, 느리게 / 엄정섭

by 루17 posted Oct 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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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아 안녕]

함께, 다르게, 느리게 

 

 

 

 엄정섭

노들장애인야학 미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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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일 년간 미술수업에서 지원교사를 했던 엄정섭입니다. 저는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졸업한 후에 친구들과 은평구에 작업실을 얻었습니다. 동아리처럼 매일 모여서 수다 떨고 산책 다니고 하다 작업실을 전시공간으로 바꿔서 전시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동료이자 이웃으로 복닥거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은평구에 발을 들인지가 6년 가까이 되어 가네요. 등산 좋아하는 저는 가까이에 북한산이 있어서 좋고 동네 친구도 많아서 좋습니다.

 

  미술을 하게 된 계기는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 덕분이었습니다. 고병권 작가의 책을 읽고 난 후 하고 싶은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병권 작가가 또 저에게 영향을 미친게 있다면 이후에 ‘묵묵’이라는 책으로 엮이게 되는 칼럼을 통해 제가 노들야학에 관심을 갖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노들야학에 지원교사로 나오시던 손민지 선생님 소개로 바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원래 이렇게 되려고 했던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노들야학으로 온 것 같습니다.

 

  처음 노들에 왔을 때 다들 반갑게 환대해 주셔서 얼떨떨했습니다. 감사하고 뭔가 잘 하고 싶은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감이 잘 안 잡혔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벌어지는 일들과 이리저리 튀는 대화에 귀 기울이며 수업에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수업을 마치며 묘한 만족과 불만족 사이에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오래 해보고 싶습니다. 저번 수업보다 이번 수업을 아주 조금만 더 재밌게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신입교사 세미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도현 연구자의 ‘시좌’ 개념이었습니다. 시좌는 관점이라는 개념보다 한 시점이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더 중점을 둡니다. 원의 한 지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중심보다 변두리로 갈수록 커집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각도 역시 시점이 위치한 지점에 따라 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운데로 갈수록 예각이 되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둔각이 되어 그 사이를 흐르는 것들은 다른 유속을 가지게 됩니다.

 

  노들야학에서 미술 수업을 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받았던 미술 교육이 편향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이전까지는 입시를 위한 경쟁적인 훈련이었고 대학 이후엔 예술적 영토와 자원을 어떻게 선점하고 경영하는지에 집중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균질적이고 신속하며 효율적입니다. 반면 여러 다른 언어가 엮일수록 그 소통은 지연되고 서로를 위해 여러 번 천천히 말하게 됩니다. 그 속에 서로를 환대하는 느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수업을 하며 그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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