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5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멈춰 세운 시간, 무겁고 또 간절한 외침
-4.21 지하철 탑니다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
선바위역 54분, 쇠사슬의 무게와 외침의 이유
2025년 4월 21일 새벽, 우리는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한대앞역에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1년 만에 재개하는 지하철 투쟁. 심장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뛰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선바위역이었다. 오전 7시 38분, 열차가 선바위역 승강장의 정해진 위치에 멈춰 서자마자, 우리는 숨 가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약속된 행동에 나섰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아섰다.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휠체어로.
출근길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장 바빠지는 시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혹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뛰어가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 우리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미리 정한 대로 5호차 각 칸의 문을 막아섰다. 나는 5-2칸,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그 아슬아슬한 공간에 내 전동휠체어를 걸쳐 놓고, 목에는 준비해 온 차가운 쇠사슬을 감았다. 이 쇠사슬은 단지 물리적인 저항의 도구만은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옭아매 온 차별과 배제의 사슬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왜 다시, 이토록 극단적인 방식으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의 절박함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예상보다 더 날카롭고 거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마치 오랫동안 쌓인 불만과 분노를 우리에게 쏟아내는 듯했다.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귀를 찢는 듯한 고성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때로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위협적인 몸짓도 있었다. 그 모든 혐오와 분노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정면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마치 송곳처럼 등 뒤에 박혀왔다. 그 시선 속에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 이해할 수 없다는 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냉담함이 서려 있었다.
“국회의원 만나서 이야기해!”, “힘없는 우리한테 이러지 말고 대통령한테 가서 따져!” 악에 받친 고함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수없이 국회 문턱을 넘고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때로는 무릎 꿇고 빌기도 했다고, 지난 20년 넘게 우리의 목소리를 쉬지 않고 외쳤지만 결국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더 이상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당신들에게, 시민들에게 우리의 절박한 현실을 직접 알리러 나온 것이라고, 제발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저 정치인들에게 당신들이 대신 좀 말해달라고 호소하러 나왔다고 맞받아 외쳤다. 우리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지만, 소음과 고함 속에 뒤섞여 그 의미가 얼마나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선바위역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고, 어쩌면 경찰 당국이 미처 예상치 못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역무원들과 경찰관 두엇만 당황한 기색으로 우리를 막아설 뿐, 본격적인 경찰 병력 투입은 눈에 띄게 늦어졌다. 그렇게 열차는 기약 없이 멈춰 서 있었고, 승강장의 시간은 무겁게, 더디게 흘러갔다.
30분쯤 지났을까. 처음에는 당황하거나 침묵하던 시민들 사이에서도 점차 참았던 불만과 짜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갑시다 좀!”, “아침 출근 시간에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날카로운 외침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오늘 중요한 면접이 있어 단 1분도 늦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표정의 청년도 있었고, 시끄러운 앰프 소리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 공황 발작을 일으켜 결국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시민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며 묵묵히 기다려준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99%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느껴지는 깊은 답답함과 차가운 불편함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졌다. 회사에, 학교에 지각할 것이 분명한 시민들의 초조한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의 일상을 우리가 망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솔직히 미안했다.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들의 바쁜 아침, 하루의 시작을 우리가 가로막고, 소중한 시간을 속절없이 빼앗았다는 그 명백한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개인의 일상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행위가 쉽게 정당화될 수는 없음을 알기에, 그 미안함의 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그게 그날,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가장 솔직한 심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미안함의 감정 한편으로 또 다른 질문이, 아니 어떤 강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도 똑같은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게 해달라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목소리 높여 외칠 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던지고, 때로는 쇠사슬로 몸을 묶으며 절규할 때, 단 한 번이라도 우리의 그 절박한 외침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집 앞의 단 10cm도 안 되는 보도블록 턱 하나를 넘지 못해 절망하고, 수십 번을 에둘러 가야만 했을 때, 당신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때로는 무심하게 그 턱을 훌쩍 넘어 식당에 들어가고,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고, 학교에 갔다. 당신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그 모든 일상이, 우리에게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 간신히, 아주 조금씩 얻어내야만 하는 권리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는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공간에서, 우리 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수없이 마주해야 했던 물리적 장벽과 제도적 차별, 그리고 때로는 노골적인 혐오와 배제의 시선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받을 때, 당신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연대하기는커녕, 혹시 외면하거나 방관하지는 않았는가?
선바위역에서의 54분. 그 시간 동안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우리의 몸을 던져야만, 일상을 멈춰 세워야만 겨우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 비정한 현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하다. 왜 우리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매번 세상과 싸워야 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비난과 손가락질까지 감수해야만 하는가. 이 깊은 미안함과 그보다 더 깊은 억울함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 과연 언제쯤이면 끝낼 수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오전 8시 34분, 경찰 병력이 투입되고 나서야 우리는 열차에 올랐다. 54분 만이었다. 시위는 일단락되었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국회로 향하기 위해 동작역에서 내렸다. 9호선으로 환승하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한 시민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아주 나지막이,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응원합니다.”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어떤 길고 화려한 연설이나 구호보다도 더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마음 한구석이 잠시나마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직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큰 힘이 되었다.
진심으로 바란다. 더 이상 시민과 시민이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며 탓하고 원망하며 억울해하는 이런 가슴 아픈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그 어떤 차별이나 배제 없이, 이 사회 안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온전히 살아가고 이동할 수 있는, 그래서 더 이상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고 권리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당연한 사회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억울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