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갈라놓는 건 ‘대결’이 아니라 ‘차별’이다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취임식 기록
박지원
함께 싸우면 세상은 나아진다고 믿는 사람. 장애운동을 만나고, 서른살이 되는게 두렵지 않아졌다. 좌우명 ‘밥 잘먹고 많이 웃자’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나는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 참 민망하지만) 사회운동계 유튜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ㅎ ㅎ <집회,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브이로그 촬영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이어질 일정들을 위해 동지들과 국회의사당역에서 취침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윤석열씨가 비상계엄을 냅다 선포했다.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계엄령은 다행히 곧 해제되었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국민들의 뜨거운 열기가 매일같이 광장을 밝혔다. 떠들썩했던 겨울과 봄을 지나 윤석열씨는 결국 탄핵되었다. 불법 비상계엄 이후 6개월 만에,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의 이름은 이재명. 이재명씨는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전장연과 징글징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하지만 나 개인과는 계엄령이 해제된 바로 다음 날의 날카롭고 선명한 장면 하나뿐이다. 나 박지원. 나는 정확히 그날부로 흑화했다.



때는 12월 4일, 계엄 해제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가 열렸다. 전장연도 함께했고, 우리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외쳤다. 시국대회가 끝난 뒤 국회는 마치 민주당의 뒤풀이 장소처럼 변했다. 국회 광장에 울려 퍼지던 민주당의 빵빵한 스피커 아래에서, 전장연은 조용히 미니 앰프로 총화를 진행했다. 나는 뒤에서 피켓을 정리하며 대체 우리 대오는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다 겨우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미니앰프 소리조차 시끄럽다며 민주당원들의 야유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에는 “조용히 좀 해라”라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현장은 뒤섞이기 시작했고, 사회를 보던 서승만 씨는 이재명 대표의 요청에 따라 마이크를 그에게 넘겼다.

‘저 옆에 박경석씨가 뭐 할 말 많다고 계속 저한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박경석 선생님, 뭐 이런 행사 하는 데 와서 그렇게 하면 그게 호소력이 있겠어요? 더 미움받지. 이 마이크로 할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조용히 하세요.’더 미움받지? 저런 게 이재명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인 ‘사이다 발언’인가? 그 말을 들은 민주당원들은 “역시 이재명 당대표 님!” 하며 하트뿅뿅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후 진행된 총화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칠 때는 나도 시민인 것 같았다”는 울음 섞인 동지의 말이 결국 나를 울리고 말았다. 그날 내 눈물에 색이 있었다면 까만색이었을 것이다. !!!

겨우내 탄핵 집회에서 우리의 의제를 외치며 열심히 싸웠지만, 정작 탄핵 선고가 난 날, 나는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탄핵으로 하나 되었던 우리는, 이제 다시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수순처럼, 이재명 씨는 대한민국의 21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취임식 날, 전장연은 당선 축하 인사와 함께 “장애인도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외침을 전하고자 지하철 선전전을 하며 취임식 현장에 갔다. 취임식이 생중계되던 국회 본청 앞 마당은 또 한 번 민주당원들의 잔치가 열렸다. 6개월 전, 서럽게 울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재명! 이재명!”을 연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커다란 LED 화면에 등장한 이재명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갈라놓는 혐오와 대결위에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고 ... ’
혐오와 대결??????? 혐오는 차별과 같이 가는 단어가 아니였나? ‘위험요소’들은 제거하고 갈등은 외면하는구나. 혐오와 대결이라니 우리를 갈라놓는 ‘대결’ ... 그 한마디가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건 ‘대결’이 아니라 ‘차별’이다. 마음이 착잡했다.
그의 연설은 본인을 ‘21대 대통령 이재명’으로 소개한 뒤 미소지으며 끝났다. 파란 배경은 검은 배경으로 바뀌고 박수치는 국회의원들과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 이재명씨의 미소와, 환호와 박수소리가 점점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치 영화 속 힘없는 주인공이 된 기분. 새로운 빌런의 등장, 첩첩산중의 시작..
허망했던 취임식이었지만, 어쨌거나 당선은 축하드린다. 앞으로의 시간동안 그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국민주권정부가 무엇인지. 누가 국민인지, 어디까지가 국민인지, 고민되는 시간이길 바란다.
나는 활동가니까. 그가 제대로 된 국민주권정부를 만들도록 내 자리에서 열심히 동지들과 함께 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