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책을 많이 읽어보려고 하는데요. 읽기 순서 1,2위를 다투는 책으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의 책이고, 전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어느 지면에 자신을 평화학 연구자라고 소개하는 정희진 선생의 책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프란츠 파농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시키려는 세상에 맞서 투쟁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피부색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영원히 얼룩진 옷을 입음으로써 얼룩을 인식의 동기와 가치로 만들고자 했다.”는 소개를 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 “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얼룩진’ 옷을 벗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참 가슴에 와 박혀 여기 저기 옮겨 적곤 했습니다. 노들이라는 이름으로 자세히 만난 장애인-운동의 현장이 좋으면서도 힘들었던 이유, 감동적이면서도 피곤했던 이유가 저 문장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인데요. 정희진 선생의 풀이대로 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어쩌면 운동한다는 것은 얼룩진 옷을 입은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걸 의미했습니다. 달리 말해 보면 싸움의 연속, 소외의 연속이고 그리하여 가치 있지만 고단한 생이 펼쳐집니다.
“얼룩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삶이 있다. 얼룩의 이물감, 분노 조절 실패, 사회적 시선과의 싸움…….” 마음가는대로 살아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제 옷에도 얼룩이 진 게 아닌가 싶고, 이 옷이 좋기도 하다가 벗고 싶기도 한 이 마음 때문에 어지럽습니다. 이게 다 뭔 소리냐고요? 제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는 이야깁니다. ^^
놀랍게도, 저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이 노들바람을 만들어왔는데요. 다음호부터는 김도현 야학 상근활동가가 책임 편집인 역할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저는 책 좀 읽다가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