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겨울 106호 - 엉망진창 낮 수업을 고발합니다

by 노들 posted Mar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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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낮 수업을 고발합니다
서둘러, 사납게, 따로 X
천천히, 즐겁게, 함께 O

박임당 | 수유너머N에서 주로 공부하고 있다가 지난 4월의 어느 날 노들의 낮 수업과 만나 바람이 났다고 합니다.


그것은 전부 나의 탓이었던 걸까. 오늘도 J 형은 이 모든 것이 서로 전화를 하게 만들었던 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그럼 이게 다 나 때문이에요?’ 하고 ‘욱’ 하다가 그만 둬버린다. 그런데 정말 나한테 책임이 없을까? 이 모든 갈등의 시작을 제공한 것은 정녕 나란 말인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날도 그저 그런 낮 수업 시간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수업 때 무엇을 할지, 아이디어가 없어 허덕이던 내가 야심찬 아이템을 들고 돌아왔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낮 수업은 ‘수업’보다는 ‘낮’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수업을 함께하는 교사들은 발달장애로 구분되는 우리 반 학생 분들의 삶을 살찌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느라 매 시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아이템은 바로 ‘우리끼리 연락하고 지내기’. 우리 학생 분들은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시지만, 그 사용 범위는 상당히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 반 분들은 4월부터 매일매일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 아직은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서로서로 연락도 하고, 끈끈하게 지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고른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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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려는 있었다. 주로 교사들에게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하던 학생 분이 다른 학생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며 생길지도 모를 분란의 우려, 혹은 이제 더 많은 학생들이 수시로 자주 안부를 묻게 될 우려. 그렇지만 보통은 친해지면 혹은 친해지려면 우선 전화번호부터 물어보게 되는 것이 우리네 풍속 아니던가? 외롭거나 괴로울 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얼마나 위안이 되던가? 긍정적인 효과가 더욱 클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당일 수업은 정말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서로의 번호를 저장하고, 한글을 모르는 분들은 서로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소록에 저장하도록 했다. 교실 내에서 까르륵 거리며 전화를 걸고 받는 모습은 정말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도 처음 얼마간은 서로 통화했던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운 모습이었다.

증폭 되는 갈등, 갈등, 갈등!

하지만 거기까지. 채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학생 분들의 원성은 높아져 갔다. 그것은 바로 우려했던 바로 그 일이,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00이 전화를 자꾸만 해서 잠을 못 잤어!’, ‘전화하지 마, 이쒸.’, ‘00씨~ 내가 밤에 전화하지 말랬지~?’ 한 명을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되고야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원하는 분들에 한해 수신 거부를 설정해 드렸다.

그러나 정녕 그 사건이 불씨가 되었던 것일까.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갈등은 끊이질 않고 진행 중이다. ‘빅재미’와 웃음이 많기로 소문난 우리 반이지만 웃음 다음에 곧바로 잔뜩 화가 난 고성이 오가는 일 또한 많다는 사실을 외면할 순 없으리라. 그리고 그 반대로 날카로운 고성이 오가다가도 웃음이 ‘빵’ 터지는 상황 또한 이상하기로는 비할 데 없을 정도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갈등 투성이인가? 이렇게 급격한 감정선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우리는 “천천히, 즐겁게, 함께”이지 “서둘러, 사납게, 따로” 뭐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고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갈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의 나는 어김없이 진이 빠지고, 다들 날카로워지기 마련이었다.

갈등 어루만지기 (단, 금지가 아닌 방식으로)

그렇다고 이러한 갈등이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일 리는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우리는 함께 있었고, 때문에 갈등은 온전히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갈등은 우리를 갈라놓는 못된 녀석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갈등으로 인해 서로 끈적하게 엉겨있는 셈이기도 한 것이다. 즉, 우리는 이 갈등을 천천히, 즐겁게 그리고 함께 풀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난달 야학에서 열린 ‘발달장애 인권 교육’에서 강사 선생님은 발달장애인 분들이 살면서 겪어오는 삶은 주로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서 따르도록 강요되는 방식으로 학습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규칙들 중에 부당한 것이 있더라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를 어기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규칙들을 함께 깨 나가는 것이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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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싸우지 말 것!’이라는 금지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신속한 갈등 해결로 이르는 길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수업 목표와는 맞지 않다. 실제로 ‘욱’ 할 때마다 갈등의 불길을 진압해보려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교사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화해하도록 눌러버리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금방 화를 누그러뜨린 K 언니는 자세마저도 쪼그라들며 상대방에게 사과를 했지만, 언니의 그 폭삭 내려앉은 눈썹 꼬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표정을 지표 삼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로, 권력 관계를 기반한 갈등 해결은 안 된다.

우선 갈등이라는 녀석을 요모조모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녀석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정말?) 우리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것들,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있는 대로 찾아서 수업시간에 던져 놓았다. 그렇기에 애초의 전화 사태도, 각자의 목소리도 더 커져가는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껏 풀어 놓고 떠드는 바람에 이런 갈등이 생기고 있는 거라면, 이는 좋은 방향으로 전개될 여지가 조금은 있는 것 아닐까?

어찌 됐건 여기서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으로 해결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갈등을 우리의 억눌린 욕망이 군데군데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라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나쁜 규칙들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이 소리를 듣기가 지금은 무척이나 괴롭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우리의 욕망을 다루는 법을, 우리의 이 뜨거운 불덩어리를 다루고 해소하는 법을 서로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볼 수 있다. 나들이를 갈 때 준수 형의 안전 운전 속도에 맞춰서 걸어 볼 수도 있고, 수연언니가 애써 한 자 한 자 뱉어내는 소리들을 인내심을 갖고 들어 볼 수도 있다. 주원이 형이 수업시간에 박차고 일어나 돌아다닐 준비를 할 때 다 같이 일어나 주원이 형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렇게 사소하게 속도를 맞추어 가는 일이 절실했다는 생각은 왜 이제야 드는 것일까.

서로의 속도를 맞추어 보는 일이 있고 나면, 우리는 얼마나 서로 다가갈지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올해의 마무리 -- 화해와 용서의 대 화합 -- 같은 건 이제 마음속에서 지워야 할 목록이 되겠다. 그것보다 더 작은 것들을 자꾸만 함께 해 보아야겠다. 바로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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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경남과 임당 (욕하는 손가락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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