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퍼스트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일본 피플퍼스트 대회 참가기
김유미 | 노들야학에서 일하며 노들바람을 만든다. 장애인운동에 기웃대며 십년을 보냈는데 요즘 들어 장애인이 누구인가 싶은 것이 어려운 게 많다. 내년엔 책도 좀 보고 공부 좀 하려고 한다.
노들야학 덕분에 난생 처음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나고 보고 배울수록 어렵다고 느끼는 요즘.
요즘엔 ‘장애인’이 어렵습니다. 장애인은 누구세요?
올해 야학은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낮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중간 발표회로 10월에 ‘노들 피플퍼스트 대회’를 열었습니다. 대회는 낮수업반 학생들과 교사들 중심으로 이뤄졌고, 저는 옆에서 얼쩡거리며 피플퍼스트? 피플퍼스트 대체 그것이 뭔가 싶었습니다. 마침 10월 30일 일본 고베에서 열리는 21번째 피플퍼스트 대회에 견학을 가기로 합니다. 피플퍼스트에 대해서는 글이나 기사로 여러 번 봤는데, 봐도 잘 모르겠고 감응이 안 일어나더라고요. 아무튼 운 좋게 일본으로 견학을 갔더랍니다. 일본에서 돌아오니 대구에서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를 연다고 하대요. 그래서 이번엔 낮수업반 사람들과 대구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좀 한꺼번에 노들, 일본, 대구판 피플퍼스트 대회를 경험하게 되었네요. 그리하여 이 글을 씁니다.
사진 : 일본 고베에서 열린 피플퍼스트 대회 사진. 발표하려고 손을 든 사람들 모습.
제가 피플퍼스트 피플퍼스트 해대니까 피플퍼스트가 무엇인가 궁금하실 텐데요. 피플퍼스트는 영어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피플과 먼저라는 뜻의 퍼스트를 합친 말이지요. 사람이 먼저다, 인간이 먼저다 그런 뜻인데요. 왜 이것이 대회의 이름이 되었냐 하면, 이것이 대회의 의미를 잘 전달하는 유서 깊은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 스웨덴에서 정신지체인 클럽을 중심으로 자기옹호 운동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1968년엔 장애인 부모단체가 1회 자기권리주장대회를 열기도 하고, 이후 여러 곳으로 지적장애인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1973년이 되어 미국 오레곤주에서 당사자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한 장애인 참가자가 자신이 “mentally retarded(정신지체)”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I want to be treated like people first.” 그러니까 나는 정신지체 장애인이기 전에 먼저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다 라고 말한 거지요.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으로 ‘피플퍼스트’라는 이름의 운동이 조직돼 나갔다 하고, 피플퍼스트는 지적·발달장애인 스스로 중심이 돼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 대회를 준비하면서, 또 대회를 참관할 때 여러 번 반복해 들은 주의사항이 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아닌 이들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이른바 ‘조력자’들은 당사자보다 먼저 나서서 발언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요청하는 것에 한해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뭐 인간사회에서 어딜 가나 해당하는 원칙 같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들도 다분하고 특히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많이 모인 곳에선 더욱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잘해주고 싶은 ‘선의’에 의해 그리 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조력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학습은 중요하고 되새김질할 만하다고도 느꼈습니다. 아무튼 저는 비발달장애인 조력자의 위치에서 이 대회에 참가하려고 애썼습니다. 조력자의 위치에서 재밌는 건 발달장애가 있지 않은 신체장애인 활동가들의 태도였습니다. 휠체어를 탄 활동가들은 “그동안 내가 비장애인 질서에 맞서서 내 권리를 말하려고 얼마나 싸워왔는데, 여기 오니까 나보고 조력자래. 말하지 말고 듣기만 하래!”라며 당황하기도 하더라고요.
피플퍼스트 대회에 다녀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여러 입장에서 몇 편의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들바람에 새로운 글을 쓸 기력이 부족하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연 피플퍼스트 보고대회 때 발표한 글을... 조금 수정해... 여기에 우려먹을까 합니다. 저는 고베에서 열린 21회 피플퍼스트 대회 이튿날 분과회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부끄러운 발표를 했습니다. 스미마셍. 이 발표문의 제목은 ‘자리를 바꿔 볼까요?’입니다.
사진 : 고베 피플퍼스트 시작 모습. 참가자들이 사는 지역 이름을 팻말에 써서 들고 대회장에 입장해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 힘낼 준비 되셨어요?”
고베 피플퍼스트 대회 이튿날 오전 제가 참여한 분과회의는 이 말로 시작했습니다. 분과회의 전체 주제는 12가지였고, 저는 ‘힘이 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8분과에 참가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주제로 참가 인원이 12개 팀으로 쪼개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의 주제 12가지>
1 피해자권리조약
2 일
3 피플퍼스트란 무엇인가
4 더욱 알기 쉽다란 무엇인가
5 모두가 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
6 말과 커뮤니케이션
7 자신의 역사를 말하자
8 힘이 나는 이야기
9 그룹 홈
10 결혼, 연애
11 자신에 대해 자랑하자
12 학대사건에 대하여
‘힘이 나는 이야기’ 8분과회의는 7~80명쯤 되는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한국 사람이 10명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해서 궁금한 게 있어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못하고, 상대가 말을 걸어도 답하지 못하고, 통역 수신기에 의존해 미소만 짓는 처지였습니다.
제가 참가한 ‘힘이 나는 이야기’ 8분과는 다섯 가지 이야기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말을 하는 회의였습니다. 이토 쿄스케 씨 등 5명이 무대 위에 올라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몸 풀기 마음 풀기 시간’이 있었는데요. 이 시간동안 저는 짧고 굵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진행자들은 분과회의 참가자들이 대회장에 입장할 때 빨강, 노랑, 파랑 스티커를 나눠줬습니다. 행사가 시작하자, 그것을 몸 아무 곳에나 붙이라고 했고, 사람들은 팔뚝에, 가슴팍에, 얼굴에 자유롭게 붙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와 같은 색깔 스티커를 붙인 사람을 찾아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짧은 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색깔 스티커를 찾는데, 저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력자인데, 나도 참가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어떤 여성이 다가와 뭔가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름 말고는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의 답을 기다리는 그 분에게 한일 장애인계의 연대를 위해 거창하게 답해주고 싶었습니다만, 나마에와 유미(내 이름 유미), 캉코쿠진(한국 사람), 스미마셍(죄송)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 분과 당 한 명뿐인 통역자는 저쪽에서 다른 사람의 대화를 성사시켜주느라 바빴습니다. 저는 나름 한국에서 장애유형과 장애등급을 구분해내는 능력을 갈고 닦아왔습니다만, 몸 풀기 마음 열기를 하는 동안 지금 내게 말을 거는 이 사람이 발달장애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명함에 영어가 섞여 있던 몇몇만 비발달장애인, 조력자이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내가 지금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을 해봤자 이들과 소통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나는 무슨 장애 비장애 구분병이라도 걸렸나, 이 태도는 어디서 왔을까 등으로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일본말을 못하면 넉살이라도 있어서 잘 놀면 좋았으련만, 저는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고, 빨리 본대회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보며 저와 몸 풀기 마음 열기를 한 사람들은 나를 한국에서 온 발달장애인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 그러면 장애인은 대체 뭘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인사 시간이 지나가고 본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5가지 주제로, 한 명이 하나의 주제를 맡아서 진행을 했습니다. 진행을 맡은 사람이 먼저 주제에 맞게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면, 이어서 무대 아래 참가자들이 발표를 이어가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발표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손을 들면 무대 위 진행자가 한 명씩 지목해서 말을 들었습니다.
‘힘이 나는 이야기’의 첫 번째 이야기 주제는 ‘나는 행복하다’였습니다. 무대 위 진행자는 다함께 ‘나는 행복하다’를 외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나는 행복하다’를 세 번쯤 외친 뒤, 언제 행복한지를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멋있어 보일 때 행복해요.” “저는 매일매일 행복해요.” “혼자서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혼자서 살자!” “외출할 때 정말 즐거워요.” “이렇게 생활할 수 있는 게 행복해요.” “일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갈 때 또 하나는 노래방에 갈 때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목청 터져라 부를 때.” “항상 이렇게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대한 한두 문장의 발표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카무라 씨는 화이팅하고 있어요.” 같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발표를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발표 내용과 관계없이 한 사람이 발표를 마칠 때마다 응원과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사진 : 다 코너~ 자유발언 시간.
‘나는 행복하다’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 주제는 ‘제가 결정할 거예요’, ‘모두에게 친절하게’, ‘저는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멋지다’였습니다. 비발달장애인 대회였다면, 이 주제들은 행복추구권, 자기존중감, 자기결정권, 권익옹호 같은 압축되고 다소 어려운 단어들로 이야기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쉬운 말들로, 조금은 귀엽고 친절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는 활기차게 계속됐습니다. 무대 아래 사람들은 “하이~”라고 외치며 손을 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권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무대 위 진행자가 손을 든 사람들 중 발언자를 마음속으로 골라 “앞쪽에 분홍색 티셔츠 입은 남자분” “뒤에 안경 쓰고 까만색 티셔츠” 이런 식으로 지목하고, 조력자들이 뛰어가 마이크를 전달했습니다. 어떤 진행자는 종종 마이크가 잘못 전달되면, “아니요. 그 옆에 옆에, 뒤에 까만 티!”하고 다시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결정할 거예요’를 주제로 발표를 할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자랑 섞인 발표를 많이 했습니다. 이 발표에서는 참가자들이 처한 사회 환경을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자신이 결정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고 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자립생활을 자랑하는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 저 정말 훌륭하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룹홈 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화이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자립생활을 응원하면서 말이지요. 이 외에도 “저는 혼자서 외출해요.” “지금부터라도 밖에 사는 것을 제 자신이 결정했습니다.” “피플퍼스트에 항상 참여하는 것이에요. 일도 잘하고 있어요. 피플퍼스트에 참여해서 더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같은 자기 다짐들을 발표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자립생활에 관한 자랑과 응원의 말들이 쏟아진 것은 일본 역시나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회 첫날 대지진과 학대사건에 대한 발표에서는 거주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대지진 이후에 거주시설로 보내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들이 있었고, 재해가 없었을 때도 원치 않는 시설 생활을 했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사회와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 장애인당사자들은 거주시설로 보내지고 있는 것인데, 당사자들은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 주제들도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열렬한 발표 요청과 엄격한 선정 속에 이뤄졌습니다. 분과회의 중반이 넘어서자 조력자로 참가한 저를 비롯한 한국 참가단에도 발언권이 주어졌고, 문 모 활동가가 ‘저는 싸우고 있습니다’ 주제 발표에서 한국 광화문에서 장애인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발언해 많은 박수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열심히 손을 들었지만 진행자는 저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제 뒤편에 앉아있던 한 여성은 대회 말미에 “혼자 이렇게 화이팅하고 있는데 안 시켜주다니...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라며 큰 소리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이미 분과회의 초반에 한 차례 발표를 했었습니다.
사진 : 열렬한 발언 의지! 손을 쳐들고 발언을 요청하는 사람들.
지목을 받은 사람들이 발표하는 걸 지켜보는 건 저로선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비발달장애인의 정체성으로 (구분돼) 오래 살아왔고, 또 이렇게 많은 발달장애인분들과 이런 대회를 함께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회와 토론회를 숱하게 다녀보았지만 이토록 열렬히 발표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만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회 첫날 ‘다-대회’ (자유주제 발표) 때도 그랬고, 이 8분과회의도 그랬고 사람들은 끝없이 “하이~”라고 외치며,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통역기를 통해 이어지는 발표를 듣다가 조금 지쳤습니다만, 발표는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니, 하는 생각에 좀 놀랐습니다. 지목을 받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를 쥐고 ‘음음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그냥 자리에 앉는 분도 있었고, “에또,,, 에또... 에또...”를 열 번은 넘게 반복하며 짧은 문장을 발표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화려한 어필을 통해 지목을 받은 어떤 사람은 바로 앞 사람이 발표한 내용 “즐거웠습니다”를 똑같이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엄청난 발표 열망 자체가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활발하게 발표하는 분위기였지만, 가만히 자리에 앉아 듣고만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모두가 다 어떠했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장을 어슬렁거렸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며 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큰 소리를 내며 우는 분도 있었고, 양손을 휘저으며 활동보조인이나 옆 사람을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눈에 꽤 중증 발달장애인으로 보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분들은 일본말을 못하는 제가 알아차릴 정도로 다른 이의 발표를 방해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는데, 딱히 제지하는 사람 없이 그대로 행사는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그대로 껴안고 가는 것이 피플퍼스트 대회의 미덕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좀 다른 생각이 일기도 했는데, 이를 테면 대회장을 뛰어다니면 뭐 어떤가? 앉아 있기 싫을 때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내 마음속에서도 그런 지시를 하는 자가 있지 않은가? 나는 왜 이렇게 길들여졌을까?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열린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에서는 좀 더 멋있는 분을 보기도 했는데, 이 분은 행사 초반에 무대에 올라가서는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서 춤을 추거나 뛰었고, 보통은 무대 한 곳에 앉아 있는 식이었습니다. 행위 예술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유와 매력이 넘쳤고, 무대에서 다른 참가자들이 뭘하든 그 분을 유심히 계속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비장애인 중심의 대회들, 행사들은 이른바 잘 세팅되고 매끄럽게 짜인 무대를 선보이려고 무지 애쓰고 거기서 오는 감동이 있는데, 그와 다르게 그런 질서들을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이) 한 방에 무너뜨리는 이 곳 역시 굉장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한 발표자가 말을 더듬다가 “다시 처음부터 말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무대 옆에서, 아래에서 “잘할 수 있어. 파이팅.”하고 외쳐주거나 옆 발표자가 대신해 발표문을 읽어주고, 원래 맡은 사람이 다시 용기가 생겼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래도 괜찮은 무대. 이 무대를 보면서 저는 점점 무장해제 돼가고, 유쾌해져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강고한 비발달장애인 사회의 질서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능력이 발달장애인들과 이 대회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진 : 이것은 대구에서 열린 피플퍼스트 대회 폐회 모습.
전체 대회와 마찬가지로 분과회의 역시 진행과 발표가 ‘쉬운 말’로 이뤄졌습니다. 한국말로 통역된 일본인들의 발표 내용은 “저는 매일매일 행복해요” 같은 단순한 짜임의 쉽고 직선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발표들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대회 첫날 첫 발표를 들으며 뭔가 내용이 부실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 실수투성이인 이 대회와 사람들이 그저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보거나 미성숙한 자로 치부하는 시선이 내면화되어 그리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도 하게 됐습니다. 이런 비장애인 사회에 찌든 소감을 쉬는 시간 어느 동료 활동가1)에게 전하자, 그가 말하길 '피플퍼스트 대회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결과물을 놓고 비장애인 시선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1년 꼬박 당사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준비해온 행사라는 거였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발언권이 없는 상태로 대회를 계속 지켜보게 되면서 이 피플퍼스트 대회가 발달장애인과 비발달장애인의 자리를 역전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향해 수없이 지시하고, 가르치고, 구박해온 입들이 틀어 막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올해 번역돼 나온 책 중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가 있는데, 피플퍼스트 대회가 비장애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같은 자리의 역전, 위치 바꾸기를 통해 ‘듣는 훈련’의 기회를 얻었습니다.2)
이 말들은 의미가 없는가? 이들은 아이 같은가? 지금 이 자리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피플퍼스트 대회는 이 세계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어 자기반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의미 있는 것으로 혹은 부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듣는 이들의 태도 아닐까? 무시해온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존재로 불쌍히 여겨온 것 같은데? 나는 그동안 이들을 나와 같은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었던 게 정말 맞는가? 위계 속에서 내가 우월한 위치에 앉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들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이들의 말(행동)을 해석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건 나 아닌가? 우리 사회 아닌가? 이렇게 입장을 뒤집어보게 되는 반성과 전복의 생각이 계속 일어났는데, 저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고민의 지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함께 견학을 갔던 비발달장애인 참가자들의 공통된 호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 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이니 자조모임이니 하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만나야 한단 말인가, 문제행동으로 치부해오던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갈 것인가? 당사자 중심으로 내용을 바꿔간다면 까다로운 사업 증빙까지 해내야 하는 기획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을까? 등등...
어쨌든 이런 고민과 답답함이 곳곳에서 생겨났다는 것, 아주 작은 씨앗 같은 이해의 태도가 심어졌다는 것. 이것이 이번 피플퍼스트 대회 견학의 성과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1)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이찬미. 야학 낮수업에 참가하는 소민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고베에서 유명하다는 스타벅스에 함께 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고베 스벅이 왜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 ㅎㅎ
2) 협의회 평가모임 자리에서 그리고 고베 일대를 함께 싸돌아다니던 와중에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사무국장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해댔다. 발달장애인의 언어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당시 나는 쇼핑 마귀가 쓰여 남은 시간엔 뭘 먹고, 뭘 사러 갈까 고민하느라 사람 말은 잘 안 들렸는데, 다행히 그때의 말이 어딘가에 붙어 있다가 다시 자꾸 생각나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똑바로 이해한 건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