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판 핫이슈 1 】
우리 그냥 복지 지원하게 해주세요, 네?
형님의 횡포에 대한 어느 지자체의 호소
서기현 |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고생하다 장판에 들어와 굴러먹은 지 15여 년. 현재 어느 자립생활센터에서 소장으로 놀고먹으며... 오로지 주둥아리 하나로 버티는 중.
저는 대한민국의 어느 지자체입니다.
요즘 저는 아주 아주 머리가 아프답니다. 나라에서 제가 제 돈을 들여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해서요. ㅠㅠ
사실 대놓고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복지 사업 중에서 유사·중복인 것을 *자율적*으로 찾아서 보건복지부 형님과 *협의*해서 정비하라는 건데요. 근데 솔직히 나라에서 살짝 모자란 복지를 제가 우리 지역에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없는 살림에 어렵게 하고 있던 건데 그걸 정리하라니요? 도와주질 못할망정... ㅠㅠ
엊그제 그분과 톡한 내용을 공유할게요. (그분께는 비밀요... ㅜㅠ)
(단톡방 대화 내용 텍스트) - 지자체 단톡방 (참가자 4명) - 복지부 : 어이, 을병시, 너 돈 많은가봐? 뭘 이렇게 퍼주고 있어? 나 : 네? 갑자기 무슨...? 복지부 : 나도 안 하는 걸 왜 네가 하고 있냐고... 아놔... 딴 애들도 너 때문에 할 거 아냐... 가뜩이나 지금 나라에 돈이 없는데... 나 : 무슨 말씀이신지...? 복지부 :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주고 있지? 그거 우리가 주는 거 하고 중복이잖아. 하지 말라고.. 나 : 아, 아니 그건 형님이 다 못주니까 나머지만 조금 주는 건데요??? 복지부 : 아 몰라, 여튼 중복이자너. 하지마. 하지 말라면 하지마. 나 : ??? 복지부 : 그거 줄려면 그만큼 네 월급(교부금)에서 깔 테니까 알아서 해. 난 얘기했음. 나 : 그런 게 어디있....? <복지부 님이 나갔습니다.> - 지자체 단톡방 (참가자 3명) - 나 : ……. 병정시 : 또 시작이야... ㅠㅠㅠㅠ 저 형님 어제 나에게는 어르신들에게 장수 수당으로 2만원 드린다고 그거 하지 말라고 개지랄 하더라 ;;; 나 : 그거 큰 누님이 약속 못 지킨 기초연금 대신 네가 빚내서 드리던 거 아니었어? 병정시 : 빚까진 아니고 다른 데 쓸 돈 아껴서 드리던 거였는데... 하아... 애초에 그 약속을 지키던가... 어르신들은 그 누님 그 약속 보고 뽑아준 건데... 저렇게 입 싹 닦고 있으니... 아무시 : 그 누님 약속 안 지킨 게 어디 한두 갠가... -.- 요즘에는 출장가셔서 옷 자랑만 하던데... ㅋㅋㅋ 그나저나 저 형님은 뭘 믿고 저렇게 날뛴데...? 병정시 : 그 누님. 아무시 :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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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무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에요. 복지부가 중복 유사 사업을 정리하라는 근거로 드는 사회보장기본법 26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와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여 사회보장 급여가 중복 또는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변경의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 방안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는 사전에 서로 협의해야 하구요.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무총리 산하 사회보장위원회가 이를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문제는 복지부가 이 기준을 제멋대로 그때그때마다 달리 적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지자체의 특색에 맞게 자율적으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을 근거로 복지부가 그 정책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실제로 지난해에 대구시는 2015년 2월부터 활동지원서비스를 24시간 지원하기로 했었는데 복지부는 그 정책에 대한 협의 요청을 거부함에 따라 그 정책은 무산된 적이 있지요.
인천시에서도 보건복지부 방침에 따라 기존에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지원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 그 정책을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부랴부랴 장애인 단체에서는 그것을 막고자 인천시청을 점거하는 농성을 진행했었고 일부 입장을 철회하기도 했죠. 하지만 복지부의 방침, 그러니까 중복 유사 사업을 없애는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진 않았어요.
복지부의 입장은 이렇게 중복 유사 사업을 정리하면 저장의 효율성이 극대화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양산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기존의 지자체에서 받고 있던 지원이 하루아침에 끊길 수 있는 그래서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날 것이구요.
지자체가 복지정책을 자율적으로 펼치지 못하게 됨으로써 지방자치제의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제발 우리 그냥 복지지원 하게 해주면 안 될까요? 복지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