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겨울 106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the power of 승배

by 노들 posted Jan 13,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노들은 사랑을 싣고 】
the power of 승배
야학 동문 정승배 학생


김진수 | 야학교사 진수입니다. 요새 취미는 점심시간마다 낙산에 올라 제가 살고 있는 곳을 보고 오는 거예요.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보는 일은 언제나 좋네요.


“나 술 끊었어.”
여의도 집회에서, 4년 만에 만난 그가 보자마자 건넨 말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한 말. 다른 많은 말을 두고, 굳이 저 말을 먼저 한 그의 지금이 궁금했다. 이번 [노들은 사랑을 싣고]의 주인공은 야학 동문 정승배 학생이다.

106nd_03.jpg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 응. 잘 지내고 있어.

요샌 뭐 하면서 사세요? 저번에 여의도 집회에서 뵙고, 인천시청 투쟁현장에서도 보고 했는데. 
- 12월부터 활동보조 시간이 400시간으로 늘어나서 집회도 나가고 센터도 다니고 있어. 내년부터는 민들레 야학에 다닐 예정이야.

그렇구나. 인천에 온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왜 인천으로 오셨어요? 
- 10월에 왔어. 발바닥에서 먼저 서울에 알아 봤는데 구하기 힘들었나봐. 그래서 인천으로 오게 됐어. 고마워 발바닥에.

잘 됐네요. 집 좋네요. 그럼 여기선 언제까지 사세요?? 
- 5년 동안 살 수 있어. 5년 후에 연장 가능하고.

아~ 그럼 앞으로 계속 인천에서 사실 생각인 거예요? 
- 아니 돈 모아서 김포로 갈 거야.

거기 시설 있었던 곳 아니에요? 왜 하필 그곳으로 가려고 하세요? 
- 비밀이야. 아무튼 돈 모으면 김포로 가서 살고 싶어.

비밀이라니, 굳이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형, 그럼 술은... 
- 끊었지! 담배도 끊었어. 담배 값이 너무 올라서 끊어 버렸어.

잘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 대신 커피를 많이 마셔.

커피요? 
(형은 말없이 서랍장을 열어 커피를 보여 줬다. 서랍장 안에는 ‘내 손안에 작은 카페’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거 믹스 커피도 아니고 비싼 거잖아요. 아메리카노네. 담배값보다 커피값이 더 들겠는데요?ㅋㅋ 야학 오면 매일 먹는데. 아버님이 매일 커피 만들어 주세요. 원두로. 야학 놀러 오세요, 형! 커피 한잔해요! 
- 응. 놀러 갈게. 나 적금도 들고 있어. 한 달에 25만원씩.

그렇게 많이 하세요? 난 십원도 못하고 있는데 나도 얼른 적금을 해야겠어요. 요샌 돈이 어디로 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때 형이 갑자기 핸드폰을 내미셨다. 그러곤 말이 없으셨다. 핸드폰엔 어머니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있었다. 나도 말없이 한동안 핸드폰을 바라봤다.)

어머니 많이 보고 싶으시죠. 
- 아니 안 보고 싶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해 놓고 안 보고 싶다니요. 거짓말 마세요, 형. 가족들이랑은 연락하세요? 
- 아버지랑은 가끔 연락해. 나머지 식구들은 내가 말없이 시설에서 나온 걸 싫어해서 연락을 끊은 지 좀 됐어.

음... 네. 알겠어요. 야학에서 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 
- 문주형이랑 상연이형. 아버님도 보고 싶어.

그렇지 않아도 상연이형이랑 같이 오려고 했는데 형이 몸이 안 좋아서 못 왔어요. 
- 교사들은 많이 바뀌었지?

네. 많이 바뀌었지요. 새로 오신 분들이 많아요. 야학 꼭 놀러오세요, 형. 새로운 교사들도 보고 문주형 상연이형 아버님도 보러. 
- 응 갈게. 놀러 갈게.

꼭 놀러 오세요. 겨울에 추워서 힘들면 날 풀린 봄에라도 꼭! 그럼 형 마지막으로 노들에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 지금 생각하면 창피해. 노들에. 맨날 술 먹고 사람들에게 피해주고.

지금은 끊었다면서요, 술. 그러면 됐죠. 뭐!


'the power of love' 티비는 사랑을 싣고의 하이라이트는 이 노래와 함께 시작한다. 노래가 깔리면 드디어 추억속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몇 십 년 전의 사람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초월하고 거리를 초월하여 만남을 이룬다. 만나게 하는 힘. 서로가 서로를 찾게 하는 그 힘은, 바로 사랑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내내 말없이 어머니 사진을 보여줬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진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다던 형의 말이 귓속에 맴돌았다. 부디 형이 만나기를. 김포에서 어머니와 따뜻한 커피 한잔할 수 있기를. 승배의 힘으로. 사랑의 힘으로.


TAG •

Articles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