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농성? 자연스럽게 끝나는 날이 옵니다
두 제도 완전히 폐지되면 당연히 농성도 끝!
김 유 미 | 노들야학 상근자로 일하며 노들바람을 만든다. 물론 혼자서 다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야학 근처에 있는 낙산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등산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건강하고 싶어 한다.
2015년 8월 21일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농성을 한 지 3년이 되었다. 노들야학 교장이면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광화문공동행동 공동대표인 박경석 선생님을 어렵게 만나 광화문농성 3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눠 봤다. 인터뷰는 원고 마감 기한이 지난 어느 날, 광화문농성 3주년을 맞아 기획한 삶삼한 연대 투쟁도 지난 어느 날에 이뤄졌다. 밤 10시 30분, 12시면 문을 닫는 야학 근처 어느 까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진 : 2015년 8월, 농성 3년을 맞은 광화문농성장 모습.
김유미 :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을 한 지 3년이 됐죠. 이게 광화문에서 한 게 3년이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문제로 1박2일 농성, 일주일 농성 뭐 그렇게 여러 번 했었잖아요. 종각역에서 천막 치고 농성하고, 안국역에서 노숙하고, 국회 앞에서도 하고 그랬잖아요. 광화문에 자리 잡고 농성한 게 3년인 건데, 농성 좋아하시나봐요?
박경석 : 좋아한다, 라고 표현해도 괜찮고. 장애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봅시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희망을 잃고 상실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순종하고 체념하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인데요.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가지지 못한 채 하루 하루 견디다 사라져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 사회는 이들에게 스스로 살아가라, 너의 변화들을 만들어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들에게 다른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저는 이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하지 않고서는 이 사람들의 삶,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 희망, 자기 존중감 이런 것들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 변화를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갈등이 일어나거든요. 지금의 이 사회를 지키려고 하는 기득권이라는 게 있잖아요. 주로 돈 많은 사람들, 권력 가진 자들이요. 우리는 그것에 맞서서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과의 투쟁은 필연적이라고 봐요. 변화는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 특히 함께 움직이는 것은 부닥치는 것이고, 부닥치는 것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텐데요. 협력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움직이고 부닥치는 것이 우리에겐 농성 같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런 부닥침은 필연인 건데, 이를 즐길 것이냐 억지로 할 것이냐, 이게 중요하다고 봐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요.
농성이라는 것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자부심을 만들어내고 변화의 기회를 확장시키고, 스스로 또 자신들의 할 일을 찾게 하는 수많은 능력이 있다고 봐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중증장애인이 온몸으로 도로를 막으면서 이 사회에서 욕을 먹지만, 자기에겐 할 일이 생기는 거예요. 몸뚱어리밖에 없는 중증장애인이 집구석에서 집을 점거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인지, 이 몸뚱어리밖에 없는 중증장애인이 점거와 농성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실제로 중증장애인의 투쟁으로 삶을 변화시켜온 역사가 있어요.
이 방식과 관련해 합법, 불법 논란이 있는데요.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불법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거지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돼야 하는 것엔 동의하는데 왜 농성을 해야 하느냐. 가치는 좋은데, 그 수단에 참여할 수 있느냐, 오히려 수단으로 인해서 목적이 가치 절하 되는 것 아니냐. 또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수단화시킬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전 그것을 말장난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수단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수단이 있고 목적이 명확하게 되는 과정도 있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목적, 가치를 두고 (말들은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권력 있는 자들, 사회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들, 얼마나 목적과 가치가 명확합니까. 기득권이 정해놓은 합법적 질서의 틀을 뛰어넘어 문제 제기가 이뤄지면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이 나쁘다는 식의 말이 많이 나와요. 과연 그런가? 그 논리는 지금의 기득권들을 유지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거 아닌가? 목적과 수단을 분리시켜 수단의 방법론을 이야기함으로써, 아무것도 못하게 하려는 거라고 생각해요. 훈계하려는 자들의 무책임함 같은 것이기도 하죠.
김유미 : 우리가 농성 1000일 되던 날부터 3주년까지 그린라이트를 했잖아요.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생각해보면, 그린라이트 하면서 욕도 엄청 먹고 그랬잖아요? 욕먹을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았어요. 첫날부터 난리가 났었으니까. 방금 집에 있던 중증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삶에 대해 요구하고 그런 것들을 긍정적인 부분으로 설명하셨는데. 그런데 이번엔 그린라이트 하면서 멘탈 털린 사람도 많이 봤어요. 욕을 너무 많이 먹은 거지... 이런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박경석 : 그런 것 때문에 힘들었죠. 경찰의 태도 문제도 있고. 소환 대상이 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시민들 욕도 그렇고... 그런 것 때문에 두려움, 갈등이 있었죠. 당연히 있을 수 있고 그런 고민들이 좀 더 발전돼서 좀 강하게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역으로 아무것도 못해서, 무기력해져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잖아요. 우리가 쓸 수 있는 하나의 전술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 안에는 중증장애인이 많으니까요.
사진 : 혜화로터리 그린라이트
사진 : 대학로 그린라이트
사진 : 국무총리 면담촉구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그린라이터들.
사진 : 대학로 그린라이트. 휠체어에 누워 있는 영애언니 뒤로 차들이 몰려오고 있다.
김유미 : 교장샘이 기획했지요?
박경석 : 그것은 말할 수 없어요.
김유미 : 그린라이트 하고 욕먹을 거는 잘 알고 있었죠?
박경석 : 음... ^^ 저는 그린라이트가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같이 가자. 왜 우리의 삶에 대해서 관심이 없느냐’하는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너무하다고 생각해서 욕을 한다면 욕을 먹어야겠지요. 오늘만 해도 뉴스에 이런 기사가 났어요. 아버지가 장애가 있는 아들을 때려죽이고 집행유예를 먹었대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버지를 더 처벌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우리 사회는 아버지가 장애아들을 때려죽이도록 만들었다 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왜 우리 스스로 그런 사회를 용인하는가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죽이는 이 사회에서 도로 하나 막는다고 뭐가 그렇게 큰 잘못인가요? 오히려 이 사회는 스스로 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정도의 자성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 도로 좀 막았는데 그래서 뭐가 그렇게 큰 문젭니까? 욕 하십시오. 그렇지만 나는 이 사회가, 아버지로부터 맞아죽어야 하는 이 사회를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부양의무제 폐지하십시오. 왜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걸로 묶어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지적장애인이 맞아 죽어야 하는 겁니까? 이런 사회에 대해서 당신은 왜 욕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김유미 : 궁금한 게 있는데. 여보세요? 지금 페이스북 보십니까?
박경석 : 아니에요. 네 물어보세요.
김유미 : 안 피곤해요?
박경석 : 지금? 지금 아니면 운동이?
김유미 : 운동이요.
박경석 : 피곤한 거는 피곤하죠. 피곤하지 않으면 사람이겠어요? 기계지.
김유미 : 나는 많이 피곤한데...
박경석 : 많이 피곤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은 그 피곤함의 의미가 뭔가 그런 것들을 좀 고민해보면... 모든 삶은 고역이에요.
(깔깔)
박경석 : 성경에 그렇게 있어. 욥기.
김유미 : 왜 이상한 거 말해요 갑자기.
박경석 :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더 후퇴되는 느낌들이 있고. 근데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앞으로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피곤함 때문에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밤 11시가 다 되어간다>
사진 : 광화문역 안으로 장애인 활동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경찰.
사진 : 2012년 8월 21일 광화문역사 통로에 밀고 들고 들어가 자리를 깔았다.
김유미 : 농성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박경석 : 농성 처음 들어간 날이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남아요. 거의 11시간을 싸워서 자리를 잡은 거요. 전국에서 온 많은 사람이 있었고 함께 투쟁했고 1박 2일 동안 함께 견뎠고... 그리고 마침내 11시간의 투쟁을 통해서 그 공간을 변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1년 2년 3년 시간이 흐르면서, 1년 때 모이는 것과 지금 모이는 건 다르거든요. 우리는 조금씩 지쳐나가는 것 같지만 조금씩 이어져나가는 진지와 같은 공간이 있기 때문에 3년 때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잖아요. 많은 사람이 이 공간을 한 번씩 거쳐 가고, 그렇게 지켜냈다는 것이 의미 있지요. 그리고 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수 있다고 봅니다. 3년 전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3년을 보내면서 광화문농성장이 우리 운동의 성지가 돼 가는 느낌을 받아요. 성지순례 그런 거 있잖아요. 투쟁? 그러면 광화문농성장에 가보는 거죠. 아직은 그런 기능이 잘 확장돼 있지 않고, 누군가에겐 지겨운 공간일 수도 있지만요. 이 운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면 꼭 한 번 와봐야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어가야 하고요. 꼭 한 번이라도 오라고 하니까 이렇게라도 와서 1년이 지켜지잖아요. 이번 3주년 투쟁 때 밥을 600개 준비했는데 우리가 그 밥을 다 먹고 모자라더라고요. 대략 7~800명이 온 거죠. 내년도엔 1000명, 2000명이 올 수 있게 만들어야지요.
이런 희망 섞인 운동들을 할 수 있게 한 도화선이 저는 3년 전 11시간 동안의 투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날 경찰이 화장실도 못 가게 막고 있어서 ‘화장실 좀 가자’고 투쟁 구호를 외쳤어요. 경찰들 사이로 막 기어들어가고...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곳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사람들이 계단을 기어서 올라오기도 했어요. 휠체어리프트를 작동 안 시키고 있어서 사람들이 리프트에 매달려서 경찰들하고 싸우고... 그 한 지점을 두고 수많은 곳에서 장애인들이 싸웠고 결국에 경찰들을 몰아냈죠. 이 외에도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지요.
김유미 : 그날 정말 냄새가 많이 났어요.
박경석 : 무슨?
김유미 : 지하철역 통로에 몇 시간을 박혀서 계속 몸싸움을 한 거잖아요.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몰려있었고, 한여름이라 푹푹 찌니까 진짜 냄새가 막... 전 그게 기억에 납니다. 죄송합니다. 농성하면서 힘들었던 게 있다면요?
박경석 : 특별하게 힘들었다 이런 것보다...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요. 장애인들 죽여가면서까지 해야 하냐? 이런 얘기를 들을 때...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못했기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이 농성장 영정 속에 있는 건데, 마치 농성이 힘들어서 우리 장애인 동지들이 죽어간다 이런 얘기할 때 기운이 빠져요. 이 죽어간 사람들이 농성 때문에 힘들어서 죽어간 건 아니거든요. 농성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그 질문은 당연할 수 있는데, 왜 거기다 그 죽음이 마치 장애인들한테 농성장 지키라고 해서 겨울에 얼려죽이느냐고 하니까.
사진 : 광화문농성장 모습.
사진 : 광화문농성장에 있는 영정들.
김유미 :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농성을 주구장창 할 계획이라던데 사실입니까?
박경석 : 그렇지 않아요. 2년만 하겠다고 했어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는 단순하게 복지를 기술적으로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복지의 철학을 바꾸는 문제이거든요. 복지를 바라보는 철학을 바꾸려는, 패러다임 문제죠. 우리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반드시 예산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요. 이게 전제돼야 해결 가능한 문제인데요. 여전히 이 문제와 관련해 보수 정권, 박근혜 정권은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국가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 장애인을 하나의 권리 주체로 보기보다 자기 통치의 대상일 뿐이에요. 권력이 기분 좋을 때 떡고물 던져주는 대상인 거죠. 그래서 복지도 자기들이 표를 받기 위한 선전물로 사용한 것이지 진심으로 변화를 고민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3년 내내 알아가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은 지금 복지예산 3조원을 줄여가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복지 중복, 누수, 부정수급 이런 용어를 써가면서 공격하고 있어요. 이런 판에 대고 무슨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필연적인 복지예산의 확대가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러면 결국 권력을 바꿔야 하는 문제인데, 이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럼 우리가 앞으로 2년 동안 뭘 해야 할까. 우리 삶의 권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잘 표현되고 실현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해요. 2년 뒤에 있을 선거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렇다고 선거 그 날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대중적인 준비를 해야죠. 이후 어떤 권력이 오든, 이 문제와 관련해 폐지 약속을 받아내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권력이 그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대중적으로 좀 더 강고하게 이 문제를 요구해나가야겠죠. 이런 의지가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기간이 이후 2년이라고 생각해요.
김유미 : 총선, 대선 바라보고 하시는 얘기인 거죠? 근데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땐 장애등급제 폐지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박경석 : 그렇죠. 장애등급제 폐지한다고 공약했죠. 이와 관련해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고, 아마 2017년도 말에 결과가 나오고 제도화하겠다고 할 거예요. 그때 한바탕 부닥치겠죠. 장애등급제 폐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게 맞냐 가지고 부닥치는 거죠. 지금은 장애등급제 폐지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장애등급 6등급제를 없애고 중, 경으로만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이렇게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러면 결국 2017년도 말에 박근혜 정부가 장애등급제 정책 발표할 때 이것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은 우리가 중심이 되는 거예요. 부양의무제 폐지는 처음부터 안 하겠다고 했어요.
김유미 : 완화!
박경석 : 완화, 그렇죠. 폐지는 못하고 완화하겠다고 했죠. 결론적으로 보면 장애등급제 문제는 정책적 의제들의 다툼이 있는 것이고 이후 부닥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하지만 부양의무제 문제는 그렇지 못해요. 지금은 부양의무제 문제를 좀 더 의제화 시킬 필요가 있죠. 정책적 요구를 지금은 좀 더 부각시켜야 해요. 이런 식으로 논의를 일으키고 투쟁을 해나가면서 총선, 대선까지 제대로 된 투쟁을 해나가야죠.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폐지시켜야죠. 두 제도 폐지시키면 농성은 자연스럽게 끝납니다. 그게 바로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이유잖아요. 왜? 비가 올 때까지 하니까.
사진 : '국무총리 만나러, 어디까지 가봤니?'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요즘은 국무총리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김유미 : 그게 주구장창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박경석 : 언젠가 비가 오잖아요. 하늘의 비는 그렇게 오는데, 이놈의 권력과 사회는 이 문제로 기우제를 지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요. 이 사회가 반성하게 하고, 정말 눈물을 흘리게 되면 좋겠어요. 그 눈물과 함께 촉촉한 비를 내릴 수 있는... 빈곤한 삶에 촉촉한 물기. ^^ 차별받는 장애인들의 삶을 촉촉이 적셔주는 이 비를 우리는 만들어갈 거예요.
김유미 : 우리가 누굽니까?
박경석 : 당신과 나! 동지. 근데 나는 2년 후가 더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이 더 중요해요. 2년 뒤라는 꼭지점보다 선이 중요합니다. 선적인 투쟁...
김유미 : 이거 어디서 들어본 내용 같은데요. 『노마디즘』 배웠다고 또 써먹는 것 봐...
박경석 : 하하. 누가 뭐뭐... 뭐 배웠다고? 『노마디즘』에 이게 나와요?
김유미 : 본인의 것처럼 이제 다 체화되셨나봐요?
박경석 : 인터뷰 계속 질문해주세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답변이 훌륭했어요?
김유미 : 네? (전화 벨이 울린다) 장콜~?
박경석 : 여보세요? 네네네. 예, 몇 대나 남았습니까? 아 예, 좀 빨리 부탁합니다. 에... 예.
김유미 : 몇 대 남았대요?
박경석 : 17명 남았대.
<밤 11시 30분 장콜은 오지 않고, 나는 피곤하다>
사진 : 광화문광장, 농성 3주년을 맞아 열린 삶삼한 문화제에서 첫 순서로 노들음악대가 공연을 하는 모습.
인터뷰를 마치고, 더 깊어진 밤에 그린라이트 투쟁으로 영화를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금요일 저녁 한 직장맘이 차를 몰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다.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 늦을 것 같다. 혜화로터리에서 신호 대기하면서 메시지 온 게 있나 휴대폰을 확인한다. 고개를 들고 신호를 살피는데, 갑자기 몇 명의 사람이 작은 현수막을 꺼내고 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갈 수가 없다.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부양의무제가 뭐야? 왜 여기 와서 그러지?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휠체어를 탄 사람도 차 앞에 있다. 장애등급제가 뭔데 그래? 장애인 관련 된 무엇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신호가 세 번 바뀌었는데, 이 사람들 그대로 서 있다. 교통경찰이 오고 무전기 든 남자들이 와서 이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뒤차들이 클랙슨을 울린다. 옆 차선에 있던 차량 운전자가 창문을 연다. 화가 잔뜩 나서는 욕을 한다.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병신 새끼들, 누구 돈으로 먹고 사는 줄이나 알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 순간 차 앞에서 구호를 외치던 한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