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非頂上)들의 비정상(非正常)에 대한 비정상회담

by (사)노들 posted Aug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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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非頂上)들의 비정상(非正常)에 대한 비정상회담


박근혜 대통령, 복지부 장관 참석 요구에 무응답 ‘공문’이 대신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격파 위한 이단옆차기 날려
2014.08.21 22:0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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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이 농성 2주년을 맞아 21일 이른 11시 30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박근혜 정부 VS 광화문 공동행동 비정상회담’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정상회담에는 결국 비정상(非頂上)들만이 자리했고 정상(頂上)들의 자리는 커다란 공문이 대신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농성 2주년을 맞아 21일 이른 11시 30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박근혜 정부 VS 광화문 공동행동 비정상회담’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행동은 이 자리의 참석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 등에게 서신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2년 전, 경찰과 11시간의 대치 끝에 광화문역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이 마련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공약으로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약속했으나, 2년이 지난 지금 공약은 파기됐다.

 

그동안 광화문역 농성장에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정이 9개로 늘었고, 더불어 광화문역 주변엔 여러 개의 농성장이 들어섰다. ‘제발 이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염원으로 여러 농성장이 채워졌다. 가까이에는 21일로 단식 39일째인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있다. 살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 비정상(非正常)의 시대다.

 

그중에서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의 삶을 옥죄는 것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다. 이날 비정상회담 기자회견에는 먼저 ‘부양의무제를 기필코 폐지하려는 사람’ 박사라 씨가 나왔다. 그의 이야길 들어보자.

 

- L씨는 평생 노가다만 했다. 60대 중반이 돼서야 망가져 가는 몸을 견딜 수 없어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했다. 그런데 L씨에겐 40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은 부모가 있었다. 구청 공무원은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내밀며 그 부모를 찾아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결국 L씨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옛집을 찾아갔다. 90세가 넘은 노부부를 만난 L씨는 종이를 내밀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넌 이미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서명을 거부했다. 수급신청을 하지 못한 L씨는 현재 노숙을 하고 있다.

 

- K씨는 ‘노숙할지언정 무료급식은 먹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폐지도 모아봤지만 결국 수급신청을 하게 되었다. 수급신청을 하기 위해 K씨는 가족관계단절서를 썼다. 그런데 급여가 깎여 나왔다. 이혼한 전처와 함께 사는 딸의 소득 100만 원 남짓한 돈이 간주부양비로 책정된 것이다.

 

- H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그러나 부양의무제로 수급이 잘릴까 봐 노심초사한다. 그는 공중전화로 몰래 딸과 연락한다. 딸이 살기 힘들다고 하면 H씨는 그의 수급비에서 5만 원 남짓한 돈을 딸에게 보낸다. 이 때문에 H씨의 자녀는 H씨를 돌보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H씨는 본인 몸도 좋지 않건만 수급 탈락이 될까 봐 자녀와 손녀를 마음 놓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박사라 씨는 “부양의무제는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공무원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며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게 부양의무제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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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에 참석한 사람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은 ‘장애등급제를 기필코 폐지하겠다’라며 마이크를 잡았다. 최 소장은 2년 전,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으로 시작된 참담한 죽음의 행렬을 이야기했다.

 

자립해 홀로 살던 고 김주영 활동가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사이 일어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질식사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중증장애인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활동지원이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24시간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고 김주영 활동가의 죽음에 이어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해 파주의 장애남매 지우·지훈도 사망했다.

 

올해도 중증장애인들의 참담한 죽음은 이어졌다. 30년 가까이 시설에서 살다가 나이 50세가 넘어 올해 4월 지역사회에 나온 고 송국현 씨도 집에서 일어난 화재를 피하지 못해 사망했다. 지역사회에 나온 지 6개월 만에 발생한 일이다. 송 씨는 일상생활 대부분에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었으나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현재는 1, 2급까지만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씨 죽음 이후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올해 안으로 3급까지 서비스 신청을 확대하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현재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또한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사이 호흡기가 떨어져 고 오지석 씨가 6월 초 사망했다.

 

최 소장은 “장애인을 우롱하는 복지부가 있고, 장애인과의 약속을 개무시하는 정부가 있는데 어찌 광화문 농성을 멈출 수 있는가. 장애등급제가 여전히 있는데 어찌 투쟁을 접을 수 있겠는가.”라며 “우리도 짐승이 아니라 사람임을 보여주자. 원하는 복지서비스를 받고 당당하게 권리와 안전을 요구하며 행복한 삶을 꿈꾸는 내일을 만들자.”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노랑사 씨는 또 다른 ‘복지 사각지대’를 꼬집었다. HIV/AIDS 환자들의 인권침해로 최근 논란이 되었던 수동연세요양병원이 그것이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은 국내 유일의 HIV/AIDS 환자들의 요양병원으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환자들의 사망으로 언론에 그 실태가 알려졌다. 노랑사 씨는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며 “이런 나라에서 복지를 말할 수가 있나. 복지부 장관은 월급을 광화문역 농성장에 내놓아라”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비정상회담에는 ‘비정상 민중 아티스트’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마무리 공연도 이어졌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공연 도중 광화문광장으로 나가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향했다. 그의 등장에 경찰이 긴장한 듯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쌌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아랑곳없이 ‘비정상’ 민중들과 함께 “이단옆차기, 격파!”를 외쳤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격파를 위한, 비정상의 격파를 위한 시원한 이단옆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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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에는 결국 비정상(非頂上)들만이 자리했고 정상(頂上)들의 자리는 커다란 공문이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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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타 트윅스터와 관중들이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향하자 경찰이 급히 세종대왕 동상을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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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민중들과 함께하는 “이단옆차기,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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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격파를 위한 이단옆차기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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