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겨울 103호-기초법 개정, 가난한 이들의 네버엔딩 스토리

by 노들 posted Mar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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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법 개정, 가난한 이들의 네버엔딩 스토리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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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여성이자 장애인이고 기초생활수급자이자 노점상이었으며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했던 최옥란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그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최저생계를 전혀 보장하지도 못하는 수급비가 나오기 전까지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하루하루가 고달프다고 했다. 얼마의 생계비라도 보충해볼까 싶어 노점상으로 거리에 나서면 “수급비를 받던 지 노점상을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동사무소 담당직원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2000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은 불과 일 년 만에 그녀를 법 개정 운동으로 내몰았다.


빈곤사회연대는 최옥란 열사의 명동성당 농성을 계기로 결성된 기초법연석회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노동의 불안정화와 민중의 빈곤화에 맞서 광범위한 도시빈민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2004년 빈곤사회연대를 결성하였다. 그렇게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4년, 빈곤사회연대가 결성된 지 10년 만인 2014년에 기초법은 최대의 개정을 겪게 되었다.

 

이른바 ‘세 모녀 법’이라고 불리는 기초법 개정안이 작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2014년 2월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강렬한 슬픔을 안겼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고혈압 및 당뇨에 시달리던 첫째 딸,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보다 일찍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딸에게 도움이 되는 복지제도는 아무것도 없었다. 건강보험도, 산재보험도, 실업급여도 그들에게는 무용했다. 그들은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청했다 할지라도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취약한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가 그보다 더 취약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초법 개정’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 내용은 개별급여 시행, 상대적 빈곤선 도입,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사회단체의 요구를 수용한 것들이었다. 2013년 5월 새누리당 의원 10명은 정부를 대신해 기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슬로건은 수용, 내용은 불용: 목표도 효과도 없는 기초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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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과 구상은 2010년에 나온 것이다. 당시 기초법 등 제반의 빈곤정책 개선을 위해 정부는 학계와 함께 빈곤정책제도개선기획단을 운영했고, 빈곤사회연대는 이 내용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기초법 개정에 맞선 싸움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법안이 발의된 이후 개정안의 실체는 점차 명확해졌다. 슬로건은 수용했지만 내용은 전혀 수용하지 않은 ‘개악’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이 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즉,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부양의무자 기준에 결격이 없을 시 기초생활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60만 3천 원, 보장받을 수 있는 최대 현금 급여는 48만 8천 원이다. 60만 3천 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할 시에는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고, 그 이하의 소득이 있을 경우에도 최대 현금 급여에서 소득만큼을 제외하고 급여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All or Nothing(전부 혹은 전무)’이라며, 최저생계비를 조금만 넘어도 급여 박탈이 일어나는 상황과 이 때문에 탈수급을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따라서 ‘개별급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동의할 이 전제의 결론은 다소 이상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비수급빈곤층에게 가장 절실한 급여인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의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은 기존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교육급여를 제외한 개별급여는 차상위계층도 포괄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설정되었다. 비수급 빈곤층에게 가장 긴급한 욕구인 의료급여의 선정 기준은 제자리에 있으며, 오히려 나빠질 전망이다. 송파 세 모녀는 한 달 150만 원의 소득에 50만 원의 월세를 지출하던 ‘주거빈곤층’이었지만, 3인 가구의 경우 141만 원이 될 개정 주거급여의 소득 기준은 송파 세 모녀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탱하던 주요 개념인 ‘최저생계비’가 무력해지며, 주거급여와 교육급여의 주무부처가 각각 국토교통부로 교육부로 이관되고 자활사업의 대부분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가는 등 제도 운영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최저생계비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사회권을 명시한 공공부조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명백한 후퇴다.

 



공공부조의 영역 축소, 예산 절감


이번 개악의 근본 목표로 볼 수 있는 것은 공공부조 영역의 축소와 예산 절감이다. 정부는 빈곤정책 확대를 위해 많은 재정을 투여하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 9월 확정된 2015년 예산안 중 기초생활보장제도에 관한 항목을 보면 정부는 2014년에 비해 7.9%나 삭감된 예산을 편성했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타 부처로 이관될 사업(6,987억 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2014년보다 전체 규모가 줄었다. 최저생계비가 2.3% 인상된 점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삭감액은 더 커진다.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면서 예산을 축소하는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매우 의아할 따름이다.


이번 기초법 개정은 향후 근로능력이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급여를 최대한 축소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에서 진행하던 자활사업의 대부분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이미 자활사업참여 대상자는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에 우선 의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시장 취업능력이 떨어지는 빈곤층이 근로능력이 있다는 평가만으로 수급권조차 받지 못하거나, 추정소득만큼 삭감된 수급비만으로 살아가거나,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무리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을 강제하지 않으면 복지에 안주한다는, 빈곤층에 대해 정부가 지니고 있는 낙인적 인식의 결과다.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격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매우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구걸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범죄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말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문하며 그 최우선 과제로 ‘부정수급 근절’을 들었고, 17개 행정부처 합동으로 ‘부정수급 통합 콜센터’를 설치했다. 임대아파트와 쪽방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서로를 신고하는 일이 횡횡했고, 전국 곳곳에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복지제도 이용자에 대한 경찰의 개인정보 요구가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졌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후 자살한 거제 이 씨 할머니도, 송파 세 모녀의 상황도 정부의 부정수급 프레임 안에서는 제도 개선의 초점이 되지 못한다.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못 받는 것은 부정수급자들의 탓’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조건부 수급(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수급자에 대해 자활사업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급여를 보장하는 것) 조항은 사실상 강제노동 규정으로 기능하며 수급권을 제한해왔으나, 정부가 향후 강화해 나갈 ‘노동 강제’에 비교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거대한 빈곤 사각지대에 대한 우선 지원 대신 기존 수급자에 대한 채찍을 들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자


지난 2010년 가을, ‘나 때문에 아들이 못 받는 것이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떠나고 나면 동사무소 분들이 장애를 지닌 아들에게 잘 해주시길 바란다고 청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그에게 아들의 장애는 너무 비싼 아픔이었다. 자신의 월급 때문에 어머니의 수급권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빈곤사회연대로 전화를 걸어온 한 여성은 얘기했다. “방법은 세 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이민을 가든, 치매 어머니와 어떻게든 살다 굶어 죽든, 아니면 제가 먼저 죽든.”


살기 위해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던 최옥란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났다. 여전히 빈곤층이 하루가 멀다 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지금, 우리는 광화문에서 3년째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 역사 안,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이 그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누구나 가난에 빠질 수 있다’는 IMF의 경험과 각성을 통해서 만들어진 제도다.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은 14%, 절대빈곤율(최저생계비 이하)은 7.6%다. 수급권을 지닌 2.6%를 제외한 빈곤층이 사실상 무복지 상태에 놓인 사각지대다. 시간의 축을 조금 더 넓혀보자.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경험해 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4%다. 대략 4가구 중 1가구가 최소 5년 중 한 차례는 절대빈곤에 빠진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7.6% 가량의 절대빈곤층을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전체 인구의 1/4에 육박하는 우리사회의 불안정한 계층에게도 더 큰 절망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권조차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11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117만 명은 사실 사각지대가 아니다.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 대상으로 잡혀 있던, 지금도 예산만 편성하면 바로 빈곤정책 내부로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각지대에 남겨놓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빈곤층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를 의미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15년 만의 가장 큰 개정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지 않았다. 교육급여에 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는 성과가 있었으나 비수급 빈곤층과 수급 빈곤층에게 가장 중요한 생계·주거·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건재하다. 정부는 여전히 사적 부양의 책임이 준수되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임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국민의 의견이 모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더 이상의 빈곤의 심화와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를 요구하자.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연대의 큰 길을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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