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이와 함께한 자전거 여행
노들센터 재환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던 마음들은 깡통이가 앞으로 나갈수록 조금씩 옅어지고 이런 저런 걱정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차 사고가 나면 어쩌나?’, ‘강도를 만나서 못 돌아오게 되는 건 아닐까?’, ‘개한테 물리면 어쩌지?’ 문득 어린 시절 친구와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무악재를 넘어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성으로 가다가 오토바이와 부딪쳤던 일이 떠올랐다. 결국 망가진 자전거를 버리고 절뚝거리며 걸어 돌아왔던 기억.
하지만 떠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 즈음의 나는 많이 지쳐 있었고,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자주 폭발하곤 했다. 더 이상은 장애해방에 대해서도, 활동과 일에 대해서도, 심지어 기본적인 일상조차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는 무작정 떠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뒤엉킨 혼란스러운 마음을 자전거에 같이 얹은 채 나의 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온 몸이 쑤셔왔다. 특히 무릎과 엉덩이는 근육진통제를 먹어도 좀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깡통이 녀석도 힘이 부치는지 가끔 펑크가 나고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 등 말썽을 부렸다. 맞바람이 부는 날에는 짐들의 부피와 무게로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길 위에는 메뚜기, 사마귀, 지렁이, 뱀 등 피해야 할 녀석들이 천지에 널려 있고, 잠자리는 머리와 얼굴을 때리고, 하루살이는 눈과 입속으로 돌진해 왔다. 깡통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는 자전거 여행객의 쫄깃쫄깃해지는 심장을 헤아리는 아량까지는 베풀어주지는 않았다. 해가 질 무렵이면 지친 나와 깡통이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야 했고, 가을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텐트의 겉과 속을 축축하게 적시고 몸을 얼어붙게 했다.
물론 모든 여행이 그렇듯 나에게도 힘든 일들만 있지는 않았다. 길 위에서 만난 풀과 나무, 해와 달, 강과 바다, 바람과 비. 그것들은 어느 날에는 나를 거세게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어떤 날에는 내 맘을 살살 달래주기도 했으며, 순간순간의 인연들과 포개져 더욱 진하게 나에게 다가 왔다. 파이팅을 외쳐 주었던 팔당 근처의 어머님, 자신이 사용하던 비닐과 돗자리를 건네주신 충주의 참교육 어르신,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삶은 고구마와 김치를 주고 가셨던 할머니와 손녀, 10년 만이었지만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대해 주셨던 진안의 스승님, 빗속에 7시간을 달려 만난 광한루의 춘향, 목포에서 짧고 굵게 같은 길을 달렸던 노원구에 사는 청년, 삭신이 쑤시는 나를 위해 탄산 온천에 데리고 가준 제주 사는 친구 땡칠이와 아이들,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한참을 뒤따라 온 진도의 창수라는 어린이, 그리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안부와 격려로 나를 계속 달리게 해준 내 휴대폰 속의 사람들. 가는 곳 마다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길을 안내해주고, 인사를 건네주고, 함께 길을 가 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다.
살면서 가끔은 나만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한없이 막막해지는 힘든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에도 결국에는 사람들로 인해서 힘을 얻고 일어섰던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길이었지만, 다시 사람을 통하여 내가 살아온 삶의 따뜻했던 어떤 순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8일. 애초 계획은 자전거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출발 전 며칠 동안 지도를 보면서 하루하루 갈 거리와 소요시간 등을 미리 체크했다. 28일이면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돌아보기에는 나름 충분해 보였다. 여행을 시작한 첫째 날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렇지만 이틀째 되는 날부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지도상에는 길이 있는데 당최 찾을 수가 없어 헤매기도 했고, 길을 잘못 들어 한참 지나왔던 길을 허탈하게 되돌아가기도 했다. 여행 초반부터 체력은 쉽게 바닥이 나서 조그만 언덕도 자전거에서 내려 깡통이를 끌고 가게 되었고, 펑크라도 나는 날에는 수리를 하느라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오늘 계획한 곳까지 무리를 하면서 가다보니 몸은 더 힘이 들었다. 무슨 사이클 선수라도 되는 듯 바로 앞만 바라보고 기를 쓰며 페달을 돌리고 있자니, 내가 달리고 있는 건지 땅이 내게 다가오는 건지 착각마저 들어 헛웃음이 났다.
더 이상 런 키퍼(운동 측정 앱)가 알려주는 지나온 거리와 시간과 속도는 의미가 없었고, 네이버 지도의 자전거 이동 소요시간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여행은 애초의 계획과는 무관해졌다.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쉬엄쉬엄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골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고, 사람 한 명 지나지 않을 듯한 산길을 지나기도 하고, 강가에 한참을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다리 밑 그늘에 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망중한을 즐기기도 했다. 가슴 뭉클하도록 노을이 아름다운 날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산 넘어 사라져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마음까지 후련하도록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무심히 처마 밑에 앉아서 온통 투명해지는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그냥 흐르는 대로 가자고 마음을 먹으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비로소 내가 여행을 하고 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기를 쓰면 쓸수록 더 엉망이 되거나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다. 사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준비하고, 서로 힘을 얻고,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엉뚱한 것에 매달려 기를 쓰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남기곤 했다. 내일 내가 어디로 향해 갈지, 어느 곳에 머물지 나는 알 수 없다. 당분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18일째 되는 날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체험홈과 관련해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업무 복귀를 요청하는 전화였다. 기운이 좀 빠졌다. 내가 있던 곳은 해남 근처였고, 다도해와 동해의 길 등 아직 돌아볼 곳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해남 터미널에서 깡통이를 고속버스에 싣고 부산으로 점프를 한다. 부산에서 낙동강 길을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생각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다음에 다시 와봐야 할 곳을 남겨둔 거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여행을 마무리 한다. 이번 여행에 대한 기록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행한 기간: 2014년 10월 13일부터 11월 2일까지 21일 간
•깡통이와 달린 총거리: 약 1,800km
•짐들의 무게: 약 20kg
•당일 이동 거리: 최고 130km, 평균 85.7km
•지나온 곳: 8개 도(경기, 충북, 충남, 전북, 전남, 제주, 경남, 경북)의 29개 도시(양평, 여주, 충주, 청주, 세종, 공주, 부여, 서천, 군산, 익산, 전주, 진안, 남원, 담양, 광주, 나주, 목포, 제주, 서귀포, 진도, 해남, 부산, 양산, 창원, 밀양, 대구, 구미, 상주, 문경)
•비가 온 기간: 5일
•깡통이 펑크: 앞바퀴 1번, 뒷바퀴 4번
•배 이용: 목포에서 제주, 제주에서 진도(벽파진항)
•버스 이용: 해남에서 부산
여행을 하면서 몇 가지 몸으로 느끼고 확인한 것들이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는 것과 내려가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 힘든 길을 피하면 더 힘든 길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과 조금만 더 갔더라면 쉬기에 안성맞춤인 경치 좋은 곳이 나왔을 거라는 것, 지나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건 무척 힘든 일이며 마음먹고 가고자 한다면 못갈 곳이 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체험은 지나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해주는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에 대한 교훈처럼 다가왔다.
미완의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나는 다시 내게 주어진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뭔가 많은 것을 정리해서 돌아올 수 있을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아직은 무엇 하나 정리된 것도 결정된 것도 없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조급하거나 불안하진 않다. 어떤 길을 가게 되건 그 또한 나의 길이니 그저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깡통이와 함께 남은 길들을 돌아볼 생각이다. 그때는 또 어떤 필연과 우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왠지 모를 미소를 머금게 된다.